《우리의 작은 무대》
18부. 진짜 무대, 더 큰 설렘
봄 대회 무대를 마친 뒤, 스페이스러브는 분명 뭔가 달라졌다.
이제 음악실에 들어서면 네 사람 사이에 더 이상 어색함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민준이 기타 줄을 살짝만 튕겨도, 준호는 곧 스틱을 들어 리듬을 얹었고,
유리는 조용히 베이스를 안고 낮은 음을 깔았다.
하은의 목소리는 그 위를 자유롭게 흘렀다.
연습실은 어느새 네 사람만의 가장 편안한 공간이자,
동시에 가장 진지한 공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근처 소도시의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작은 콘서트 무대였다.
지역에서 활동 중인 밴드들을 초청해 공연을 하고,
마지막에는 모두 모여 합동 공연을 하는 행사였다.
하은이 체육관에서 체육대회 연습을 마치고 급히 음악실로 달려왔다.
“얘들아!
우리 정식 공연 들어왔어.
초청 공연이래.
이번엔 대회가 아니라 우리를 ‘게스트’로 부르는 거야!”
준호가 장난스럽게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우와~ 이제 진짜 우리도 섭외 받는 밴드냐?
어깨 으쓱인데?”
유리는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근데… 더 떨릴 거 같아.
이번엔 진짜 우리만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민준은 속으로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솔직히 떨렸지만, 이번엔 그 떨림이 싫지 않았다.
공연 당일.
문화센터는 아담했지만 아늑한 무대와 깔끔한 조명이 있었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 스태프들이 분주히 무대 세팅을 하고 있었다.
하은이 마이크를 잡고 작게 노래를 불렀다.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자
하은은 놀란 얼굴로 민준을 바라보며 웃었다.
“야, 나 목소리 완전 크게 들려.”
“당연하지.
이제 우리도 모니터 쓰는 프로야.”
준호가 스틱을 돌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유리는 조용히 베이스를 조율하며 속으로 박자를 세고 있었다.
민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괜히 든든했다.
드디어 공연 시간이 다가왔다.
무대 뒤에서 기다리며 네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하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우리 노래만 하자.
다른 생각 말고…
우리 처음 노래 만들 때 그 마음으로.”
민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노래하러 왔으니까.”
준호는 “레츠고!” 하고 장난스럽게 외쳤지만,
손에 잡힌 힘이 평소보다 훨씬 세게 느껴졌다.
조명이 켜졌다.
무대에 오르자 관객석이 눈에 들어왔다.
몇 십 명 정도 되는 관객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었지만,
그 얼굴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오늘… 이 사람들한테 처음으로 보여주는 거다.’
민준은 심장이 뛰었다.
손끝이 조금 차가웠다.
하은이 마이크를 잡고 민준을 바라보았다.
민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첫 코드가 울렸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너와 내가
같은 노랠 부르고 있으니까…”
하은의 목소리가 무대 위를 가득 채웠다.
이번엔 확실히 달랐다.
학교 축제, 도청 대회 때와도 또 다른 긴장과 설렘이었다.
민준은 기타를 치며 관객석을 바라보다,
결국 시선을 돌려 준호를 봤다.
준호는 “가자!” 하는 듯한 표정으로 스틱을 더 세게 내리쳤다.
유리는 살짝 눈을 감고 베이스를 눌렀다.
하은은 다시 민준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 하나에, 민준은 손끝에 담았던 모든 두려움을 놓았다.
곡이 끝나자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어떤 아이는 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찍고 있었고,
앞줄에 앉은 청소년 몇 명은 서로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은은 숨을 헐떡이며 마이크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스페이스러브였어요.
이 노래… 저희가 만든 곡이에요.
같이 불러주셔서 고마워요.”
무대를 내려오자 네 사람은 동시에 숨을 몰아쉬었다.
하은은 얼굴이 빨개져 있었지만, 눈가가 반짝였다.
“야… 나 지금까지 무대 중에 오늘이 제일 좋았어.”
준호도 스틱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야, 그거 봤냐?
앞에 애들 완전 신나서 손 흔들던 거!”
유리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노래… 진짜 좋아했나 보다.”
민준은 기타를 매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이제 진짜 밴드 같아.”
공연장 밖으로 나오자 밤공기가 서늘했다.
하은이 민준 옆으로 와서 조용히 팔짱을 꼈다.
“왜.
오늘따라 애교냐.”
“그냥… 기분 좋아서.”
하은은 장난스럽게 민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우리 계속 이렇게 하고 싶다.”
민준은 작게 웃었다.
“나도.
계속 이 노래 하고 싶어.”
그날 밤, 네 사람은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조명이 밝지도 않고,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디 대형 콘서트 백스테이지보다 더 빛났다.
“우리 언젠가 더 큰 무대 서자.”
하은이 라면 국물을 마시며 작게 말했다.
“그리고 그때도 오늘처럼 꼭 이렇게 모이자.”
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응.
우리 네 명이면 어디든 괜찮아.”
준호가 컵라면을 들며 외쳤다.
“자, 앞으로 우리 밴드의 세계정복을 위하여!”
민준은 웃으며 라면 컵을 맞댔다.
“스페이스러브,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