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찾기 위해, 다시》
1부. 무너진 오늘
서준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는 소리가 이제는 그저 귀를 때리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밤새 벽을 바라보다 겨우 잠들었기에,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침대 위엔 늘 그렇듯 구겨진 셔츠가 널브러져 있었다.
“오늘도 또 이 지경이네…”
혼잣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을 보니, 초췌한 얼굴과 퀭한 눈 밑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구두를 꿰어 신었다.
출근길은 늘 전쟁 같았다.
지하철 안은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는 듯한 밀도였다.
서준은 사람들에게 밀리고 떠밀리며 전동차 안에 간신히 들어섰다.
핸드폰으로 출근 시간 단체 채팅방을 확인했다.
[팀장: 오늘 오전까지 PT 자료 최종 보내세요.]
[대리: 네. 서준씨도 추가한 페이지 아침까지 주시기로 했죠?]
서준은 숨을 꿀꺽 삼켰다.
어젯밤 야근하다 집에 들어와서도 손도 못 대고 그냥 쓰러져 잤다.
멍하니 창밖으로 스치는 도시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도 또 혼나겠지…’ 생각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마치 모든 것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사람들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서준은 파김치 같은 몸을 끌고 자리로 갔다.
“서준씨.”
팀장이 부르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네… 팀장님.”
“PT 자료 아직이에요?”
“…죄송합니다.
오늘 오전 중으로 다 마무리해서 드리겠습니다.”
팀장은 짧게 한숨을 쉬며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서준은 자리로 주저앉았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덜덜 떨렸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대충 삼각김밥 하나를 사서 책상 위에 놓았지만,
한 입 베어 문 후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 화면을 켜자, 그곳엔
지유의 이름으로 된 카톡 창이 떠 있었다.
[지유 💛 : 오늘도 늦게 끝나?
전화는 언제 해?]
서준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미안, 오늘도 좀 늦어질 것 같아’라는 짧은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저녁이 다 돼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팀장은 퇴근하면서도 말했다.
“서준씨, 이번 프로젝트는 진짜 잘 마무리합시다.
요즘 보고 있으면 불안해서 그래.”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머릿속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나오자 차가운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그제야 숨이 조금 쉬어졌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려는데,
그때 마침 지유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서준아.]
지유의 목소리는 작았다.
평소 밝게 웃던 그녀의 톤이 아니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우리… 오늘 볼 수 있어?
나 조금 보고 싶어.]
서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시의 네온사인들이 번쩍였지만, 이상하게 눈앞이 흐릿했다.
“…오늘은 좀 어려울 것 같아.
지금 회사에서 나오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아… 그래.
알겠어.]
짧게 들려온 지유의 목소리에는
포기한 듯한 한숨이 묻어 있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자,
심장이 먹먹해졌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렇게 변명만 반복한 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지유를 사랑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이 좋았고,
함께 밥을 먹고 영화 보고 손을 잡는 그 사소한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다.
하지만 점점 지친 삶이 지유를 감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오자
아무도 없는 원룸이 그를 맞았다.
서준은 가방을 던지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현관 불을 켜놓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외로웠다.
그때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유 💛 : 우리… 조금 쉬자.]
짧은 메시지.
딱 세 마디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쉬자고…?”
혼자 중얼거린 뒤,
서준은 휴대폰을 껐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술을 마셨다.
혼자 집에서 소주를 까다 못해, 결국 거리로 나왔다.
시끄러운 호프집을 지나
편의점에서 캔맥주 몇 개를 더 사서
한강 근처 벤치에 앉았다.
술에 취해 머리가 멍해졌다.
눈앞이 아른거렸다.
‘내가 이렇게까지 살 필요가 있나…?’
무기력과 자책이 뒤엉켜 마음을 짓눌렀다.
손에는 지유와 함께 찍었던 사진이 저장된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사진 속 그녀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얼굴이었다.
일어나 도로를 걷는데,
저 멀리서 쏜살같이 달려오던 트럭의 불빛이 눈부시게 다가왔다.
몸이 휘청,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발을 헛디뎠다.
쿵-
그리고 귀를 찢는 듯한 경적 소리.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모든 소리가 찌릿하게 끊겼다.
서준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공간에 있었다.
희뿌연 안개가 자욱했다.
발밑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허공을 걷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 앞에
말끔한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서준씨.”
“…누구세요?”
“저는 관리자로 불립니다.”
“관리자…?
여기 대체 어디예요?”
남자는 부드럽게 웃었다.
“당신 삶이 멈춘 자리입니다.”
서준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가… 죽은 거예요?”
“당신은 지금 경계에 있습니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요.”
관리자는 책장 같은 것을 스윽 펼쳐 보였다.
그 안에는 서준이 살아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지유와 처음 만난 날,
둘이 손잡고 눈밭을 걷던 날,
회사에서 치이고 외롭게 술 마시던 밤.
“당신은 불행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선택할 기회를 드리려 합니다.”
서준은 눈을 크게 떴다.
“선택…?”
“당신이 원한다면,
평행세계 속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삶이 될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지요.”
“지유는요?
그 사람은…”
관리자는 살짝 미소 지었다.
“당신이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그녀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서준은 가슴이 아파 손으로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저… 다시 살고 싶어요.”
“좋습니다.
그럼 이제 당신을 새로운 삶으로 보내드리지요.”
관리자가 손을 내밀었다.
서준은 주저없이 그 손을 잡았다.
‘이번엔…
지유를 잃지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