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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기 위해, 다시

〈너를 찾기 위해, 다시〉 2부. 삶의 관리자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21.

《너를 찾기 위해, 다시》

2부. 삶의 관리자


서준은 눈을 떴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탁한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허공.
발밑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는,
마치 꿈속 같은 공간이었다.

몸을 움직이려 하자,
발은 바닥을 딛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듯 허공을 헤맸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며 불안이 온몸을 감쌌다.

“여기가… 어디야…”

그때였다.
서준의 등 뒤에서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서준 씨.”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지난번에 마주친 남자가 서 있었다.

관리자.
말끔한 회색 정장 차림에, 표정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의 주위로는 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 발광하는 존재처럼.

서준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

“여긴… 어디죠?
저… 죽은 건가요?”

관리자는 작게 웃었다.

“죽었다고도, 살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당신의 경계,
삶과 죽음 사이의 아주 얇은 틈이지요.”


서준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혼란이 몰려왔다.

“그럼… 저는 지금 어떻게 되는 건데요?”

“당신은 지금,
삶을 다시 선택할 기회를 받은 것입니다.”

“…기회?”

관리자는 손짓하자
허공에서 작은 창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그 안에는 전혀 다른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 있었다.

어떤 창에는 서준이 전혀 모르는 도시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연설을 하고 있었고,
어떤 창에는 시골 마당에서 웃통을 벗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또 다른 창에는, 기타를 들고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도 있었다.


“저건… 다 뭐예요?”

“당신이 살아갈 수도 있었던, 혹은 앞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 수많은 평행세계입니다.”

서준은 숨을 삼켰다.
그 눈앞에서 어떤 창은 꺼지듯 사라졌고,
어떤 창은 더 선명하게 빛났다.

“왜 저한테 이런 걸 보여주는 거죠?”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불행으로 가득했지요.
그래서,
당신에게 다시 살 기회를 주려 합니다.”

관리자는 부드럽게 손을 뻗어 서준의 어깨에 살짝 닿았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그의 인생이 스쳐갔다.


퇴근 후, 불 꺼진 방에서 혼자 라면을 먹던 모습.
팀장에게 혼나며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이던 모습.
그리고 지유에게 ‘오늘도 못 만날 것 같아’라고 카톡을 보내던 순간들.

마지막으로
휴대폰 속 지유의 환하게 웃는 얼굴.
그리고 차가운 도로 위,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던 자신.

서준은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었다.


“이걸… 왜 보여주죠…”

“당신이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맞아요.
평행세계 속 또 다른 당신으로 살아볼 기회를 드릴 겁니다.”

관리자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단,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서준은 두 손을 꼭 쥐었다.

“조건이요?”

“첫째, 당신은 각 세계에서 처음부터 새로 살아야 합니다.
과거를 기억한 채 시작되겠지만,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 세계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겁니다.”

“…그럼, 지유는요?
그 사람은… 거기서도 저를 모르는 건가요?”

관리자는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이 얼마나 간절히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다만 기억하세요.
당신이 하는 모든 선택이 그 세계를 바꾸고,
또 당신에게 반드시 대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대가…?”

“모든 평행세계에는 균형이 있습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얻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잃게 될 수도 있지요.”

서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지유의 얼굴만 맴돌았다.

길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던 모습,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며 “조심히 들어가!” 하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에게 “우리 조금 쉬자”라며 쓸쓸히 보낸 메시지.

‘지유를… 다시 만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다시 지유를 만날 수 있나요.”

서준은 애원하듯 물었다.
목소리가 떨려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관리자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간절히 원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어떤 삶을 선택하든,
지유를 향한 그 마음만큼은 흔들리지 마세요.”

“그럼…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럴 확률이 높아질 겁니다.”


서준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번에는 꼭 지유를 놓치지 않을 거야.’

관리자가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이 손을 잡으면,
당장 새로운 세계로 이동할 겁니다.”

서준은 주저하지 않았다.
관리자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강하게 소용돌이쳤다.
눈앞이 아찔하게 흔들리고,
귀에 커다란 바람소리 같은 게 몰아쳤다.

그리고…

“서준아!”

깜짝 놀라 눈을 뜨자,
햇살이 눈부신 대학 강의실.
낯익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앞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대학 시절의 지유가 있었다.


하얗게 웃으며 서준을 바라보는 지유.
그 모습에 숨이 막혔다.

‘진짜… 다시 만났어…?’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눈가가 뜨겁게 젖었다.

지유는 그런 서준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왜 그래?
오늘따라 이상해.
또 어제 술 마셨지?”

서준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엔… 절대로 널 놓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