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찾기 위해, 다시》
3부. 첫 번째 리셋
햇살이 눈부셨다.
서준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강의실 창밖만 바라봤다.
눈앞에 펼쳐진 건 분명 대학 캠퍼스였다.
정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벚꽃길, 강의실 복도에 붙어 있는 대자보,
그리고 아직 다 벗기지 못한 풋내기 같은 신입생들의 표정까지.
‘진짜… 다시 돌아온 거야?’
숨이 막힐 정도로 벅찼다.
그 순간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서준아!”
서준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여전히 대학생의 모습으로 웃고 있는 지유가 있었다.
서준은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봤다.
분명 기억 속 지유보다 더 어린 모습이었지만,
눈웃음, 말투, 옷 스타일까지 그대로였다.
지유는 그런 서준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멍하니 봐?
아까부터 이상해.”
서준은 숨을 고르며 작게 웃었다.
“…아니야.
그냥…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지유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에이, 또.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다정해?”
그리고는 턱을 괴고 서준을 빤히 바라봤다.
강의가 끝나고 두 사람은 캠퍼스를 걸었다.
지유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오늘 수업 끝나고 뭐 해?
나 영화 보고 싶은데.”
서준은 놀란 듯 지유를 바라봤다.
지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왜?
싫어?”
“아니… 너무 좋아서.”
“뭐야~ 오글거리게.”
지유는 그렇게 말하며 더 세게 팔짱을 꼈다.
서준은 그 체온에 가슴이 찌르르 떨렸다.
극장으로 가는 길.
지유는 계속 이야기했다.
요즘 시험 공부가 얼마나 힘든지,
친구들끼리 여행가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다 같이 가면 좋겠다는 얘기.
서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지유의 얼굴을 계속 바라봤다.
‘이게 진짜라면…
나는 이번엔 절대 너를 놓치지 않을 거야.’
영화가 끝나고,
두 사람은 극장 근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지유가 가방에서 작은 사탕을 꺼내 서준 입에 쏙 넣어주었다.
“달지?
이상하게 영화 보고 나면 단 거 먹고 싶어.”
서준은 사탕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있으면 뭘 먹어도 달아.”
“뭐야~ 너 오늘 왜 이래.”
지유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여 서준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 순간, 서준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정말 끝까지 지켜낼 거야.’
하루하루가 마치 선물 같았다.
카페에서 서로 마주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보며 한참을 웃기도 했다.
밤에 지유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조심히 들어가. 나중에 또 연락해.”
그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웃던 순간들.
서준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숨이 편하게 쉬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끔씩 가슴 한쪽이 쿡쿡 쑤셨다.
조그만 말다툼을 하거나,
지유가 잠깐 서운한 표정을 지을 때면
서준은 불안이 목을 죄어왔다.
‘혹시 또…
이전처럼 될까 봐.’
관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겁니다.”
어느 날이었다.
지유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서준이 20분이나 늦었다.
지유는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연락도 안 되고.”
서준은 괜히 목소리가 높아졌다.
“잠깐 지하철이 멈춰서 그랬다고 했잖아.”
“그래도…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서준은 그제야 지유 얼굴을 제대로 봤다.
눈가가 빨개져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서준은 허겁지겁 지유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지유는 잠시 서준을 바라보다가,
조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다음에는 꼭 늦지 마.”
서준은 그 말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밤에 혼자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서도
서준은 한참을 지유의 사진만 바라봤다.
‘이 세계에서는 꼭…
끝까지 너를 웃게 해줄 거야.’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며칠 뒤,
두 사람은 캠퍼스 축제에 갔다.
밤에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지유는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다.
“와… 너무 예쁘다!”
서준은 그런 지유를 바라보았다.
불꽃보다 더 빛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나… 너 없으면 진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지유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천천히 서준에게 입맞췄다.
“나도.
우리, 이렇게 계속 있자.”
그 순간,
멀리서 이상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꽃놀이와 아무 상관없는 불협화음 같은 소리.
서준은 불안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축제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착각인가…?’
하지만 가슴 어딘가가 싸늘해졌다.
밤에 지유를 데려다주고 혼자 돌아가는 길.
가로등 불빛 사이사이에
마치 허공이 일그러지는 듯한 환영이 잠깐 보였다.
그때 등골을 타고 한기가 내려앉았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관리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서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괜찮아.
이 세계에서는 지유만 지키면 돼.’
그렇게 되뇌며,
불안이 커지는 걸 애써 눌러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