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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기 위해, 다시

〈너를 찾기 위해, 다시〉 6부. 두 번째 세계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23.

《너를 찾기 위해, 다시》

6부. 두 번째 세계


눈을 떴을 때, 서준은 낯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겁고 따뜻한 느낌의 고급 호텔 스위트 룸 같았다.

부드러운 이불 촉감에 파묻힌 채 잠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여긴…”

머리를 돌리자, 옆 탁자 위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명함이 놓여 있었다.


서준
CEO, JS International


서준은 그 명함을 손에 쥐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CEO…?
내가… 회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탁자 위에는 최신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무심코 켜 보니,
수십 개의 문자와 수백 개의 이메일 알림이 떠 있었다.

[오늘 오후 3시, 투자 미팅 보고자료 최종 검토 예정입니다.]
[저녁 7시, 글로벌 파트너 VIP 초청 만찬 확정되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온통 회의, 미팅, 계약 관련 일정이 빽빽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단정한 정장을 입은 비서가 들어왔다.

“대표님, 일어나셨습니까?
아침 식사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 네.”

서준은 멍하니 대답했다.

비서는 서류가 든 얇은 가죽 폴더를 건넸다.

“그리고 오늘 오전 11시, 회장님과 미팅 있으십니다.”

“회장님…?”

“예, 글로벌 투자 건 보고 드리기로 하셨습니다.”


비서는 프로페셔널한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문이 닫히자, 서준은 그 자리에 주저앉듯 소파에 걸터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지만,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시렸다.

‘이번엔…
성공한 삶이란 건가.’

관리자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당신이 어떤 세계를 살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선택과 바람이 결국 그곳으로 이끌 겁니다.”


샤워를 하고 나와 거울을 보았다.
그곳에는 정갈한 머리, 잘 관리된 몸,
비싸 보이는 와이셔츠를 입은 ‘성공한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낯설었다.
왠지 모르게 쓸쓸했고,
뭔가를 오래 잃은 사람 같았다.


오전 내내 회의가 이어졌다.
최신식 빌딩의 최상층,
탁 트인 창밖으로는 도시가 장난감처럼 펼쳐졌다.

서준은 그 풍경을 멍하니 보다가
투자 담당 임원이 무언가 설명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대표님, 이 딜만 성사되면 연 매출 1조도 가능합니다.”

서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계속 진행하세요.”


점심 시간,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테이블엔 와인잔과 값비싼 요리들이 늘어섰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유가 생각났다.
캠퍼스 잔디밭에서 3천 원짜리 도시락을 나눠 먹던 그 날.
맥주 한 캔을 사이에 두고 웃던 모습.

‘그때가…
차라리 더 좋았는데.’

서준은 조용히 포크를 내려놨다.


저녁에는 VIP 만찬 자리에 참석했다.
유명 기업 대표들, 연예인, 외국인 투자자들까지
모두 서준에게 와서 악수를 청했다.

“JS 대표님, 늘 기사로만 뵙다가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진 한 장 괜찮으실까요?”

서준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사진기 플래시가 번쩍이는 순간
괜히 가슴이 헛헛했다.

‘난…
이곳에서 누구랑 행복하지?’


파티장에서 나와 혼자 리무진에 올랐을 때,
서준은 허리를 깊게 숙여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유…”

입속에서 작게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이 세계의 서준은
그 이름조차 기억 속 어디에도 없었다.

폰 연락처, 사진첩, SNS —
아무리 찾아도 지유란 이름은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넓은 거실이 그를 맞았다.

조명이 자동으로 켜졌지만
차갑게 느껴졌다.

소파에 앉아 넓은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다
문득 눈물이 났다.

‘지유 없는 성공이…
도대체 무슨 의미야.’


그날 밤 꿈을 꿨다.

잔디밭, 축제, 불꽃놀이.
그리고 그 가운데 웃고 있는 지유.

서준은 숨차게 그에게 달려갔다.

“지유야!
지유야!!”

그러나 지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천천히 멀어졌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가지 마…
제발…
가지 마——!”


그 비명을 지르는 순간
눈을 떴다.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가슴이 너무 아파 손으로 꾹 눌렀다.


그 후로도 서준은 매일 같은 꿈을 꿨다.
밤마다 지유를 찾았고,
아침에 깨면 더 공허했다.

어느 날,
또 같은 리무진 뒷좌석에서 창밖을 보다가
문득 허공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텅 빈 표정.
그리고 그 뒤로 스르륵 비틀리는 공간.


그곳에서 다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원했던 삶입니다.
성공과 부, 모든 걸 가진 삶.”

서준은 눈을 꾹 감았다.

“…지유가 없잖아요.”

“그렇다면 다시 선택하세요.”

서준은 허공에 손을 뻗었다.

“다시…
다시 한 번만…
지유를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모든 것이 소용돌이쳤다.

빛과 그림자가 뒤섞이며
또 다른 세계로 그를 끌어당겼다.

서준은 속으로 간절히 다짐했다.

‘지유…
이번에는 꼭…
널 다시 찾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