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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기 위해, 다시

〈너를 찾기 위해, 다시〉 9부. 세 번째 리셋, 작은 마을에서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25.

《너를 찾기 위해, 다시》

9부. 세 번째 리셋, 작은 마을에서


눈을 떴을 때,
서준은 부드러운 나무 향을 먼저 느꼈다.

머리 위에는 낡았지만 따뜻한 느낌의 목조 천장이 있었고,
작은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고요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여긴…”

몸을 일으키자,
가슴 언저리에 무겁게 내려앉던 불안이 조금은 덜한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박한 인테리어의 공간.
그리고 벽에는 손으로 직접 쓴 메뉴판이 걸려 있었다.


카운터 위에 놓인 작은 종이에
서투른 글씨로 적혀 있었다.

  • 오늘의 메뉴
    핸드드립 아메리카노
    수제 딸기파이
    따뜻한 홍차

그리고 맨 아래에 작게
[서준’s Café] 라고 쓰여 있었다.

서준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번 세계의 나는…
카페 주인이구나.’

손끝으로 메뉴판 글자를 가만히 쓸어내리며
작게 숨을 고르듯 웃었다.


낡은 문을 열고 나서자,
작은 골목길 끝으로 산이 부드럽게 이어져 있었다.

햇빛을 받은 초록빛이 눈부셨다.
바람이 불자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풀냄새가 났다.

‘도시에서 보던 삭막한 풍경이 아니야.’

서준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발밑에서 자갈이 살짝씩 구르는 소리가 났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했다.


카페로 돌아와 문을 열자
작은 종이 달린 문종이 딸랑 하고 울렸다.

“어서오세요…”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인사말에
서준은 스스로도 웃음이 났다.

그리고 문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여행용 백팩을 멘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햇살에 비친 얼굴이 눈부셔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모자를 벗는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지유?’


하지만 그녀는 전혀 서준을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두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낯선 시골 카페에 들어온 여행자의 경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 안녕하세요.”

지유는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서준은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 어서오세요.
혼자 여행 오신 거예요?”

지유는 살짝 웃었다.

“네.
몇 달 전부터 여기 오려고 계획했거든요.
SNS에서 이 동네 사진을 봤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서준은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세요.
물부터 드릴게요.”

지유가 가방을 내려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카운터 뒤로 돌아가
잔에 시원한 물을 담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이번에도… 결국 널 다시 만났어.’

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이 순간이 고마웠다.


지유는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창밖을 보며 말했다.

“여기 진짜 조용하네요.
마을 사람들도 다 친절하고.”

“네.
다들 소박해요.
도시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부드럽게 웃었다.

지유는 그런 서준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도…
마을 풍경이랑 잘 어울려요.”

그 말에 서준의 심장이 조용히 떨렸다.


그날 이후,
지유는 며칠간 이 마을에 머물렀다.

아침에는 동네 골목을 산책했고,
점심쯤 되면 서준의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서준은 그런 지유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을 거야.’

그저 오늘 지유가 카페에 와서 앉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어느 날은
지유가 카페 한 구석에서 작은 공책을 꺼내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서준은 카운터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써요?”

지유는 고개를 들어 웃었다.

“여행 노트예요.
매일 본 거, 느낀 거, 그런 거 적어요.”

“좋은 생각이네요.”

“나중에 돌아가서 이 노트 보면
오늘 하루가 다시 선명하게 떠오를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듣자
서준은 괜히 가슴이 저릿해졌다.

‘나는…
예전 세계에서 뭘 남겼었지.’

돈, 성공, 명예.
그런 것들 말고
정작 가슴에 남을 무언가는 없었다.


해질 무렵,
지유가 일어나 카운터로 왔다.

“저 내일이면 서울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

‘벌써…?’

지유는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 날인데,
카페 문 닫기 전에 오늘은 조금 더 있을게요.”

“그러세요.
오늘은 문 늦게까지 열어둘게요.”


저녁이 깊어지자
카페는 더 조용해졌다.

지유는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창밖 어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은 카운터 뒤에서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가갔다.

“오늘은…
늦게까지 있어줘서 고마워요.”

지유는 살짝 고개를 돌려 웃었다.

“저도 감사해요.
여기…
진짜 좋았어요.”


서준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번에는…
너를 억지로 붙잡지 않을 거야.’

그리고 조심스레 말했다.

“언제든 다시 오세요.
여기…
늘 이 자리에서 기다릴게요.”

지유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꼭 다시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