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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기 위해, 다시

〈너를 찾기 위해, 다시〉 12부. 네 번째 세계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26.

《너를 찾기 위해, 다시》

12부. 네 번째 세계


눈을 떴을 때,
서준은 숨부터 길게 들이마셨다.

어디선가 묘하게 아련한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건 낯익은 흙냄새였다.

‘여기가… 어디야…’

몸을 일으키자,
팔에 느껴지는 감촉이 이상했다.
아직 완전히 다 자라지 않은 뼈마디,
조금 짧은 다리.

그리고 허리춤에 걸린 작은 교복 바지.


“어…?”

서준은 조심스레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분명 중학생 시절의 자기 몸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과거의 조각들이 스쳤다.

학교 복도에서 달리던 모습,
친구들과 운동장 구석에 앉아 몰래 군것질하던 기억.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운동장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교복 치마를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가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햇빛에 얼굴이 환하게 빛나 보였다.

서준은 숨을 멈춘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지유?’


너무 작고 앳된 모습이었다.

기억 속에서 항상 대학생 혹은 어른이었던 지유가
이렇게 어린 얼굴로 깔깔 웃고 있는 모습이
마치 꿈 같았다.

지유는 친구에게 장난스럽게 등을 밀리더니
비틀비틀 걷다가
서준이 서 있는 복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지유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다
곧 친구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고 웃으며 뛰어갔다.

서준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그 자리에서 멈춰 서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차갑고도 뜨겁게 저릿거렸다.

‘이렇게…
처음부터 다시 만나는 거구나.’


그날 이후,
서준은 수업 시간에도 창가 쪽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지유를 찾았다.

점심시간이면
매점으로 달려가는 지유와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고,
하굣길에는 책가방을 두 손으로 잡고
웃으며 집으로 향하는 지유가 보였다.

그 모든 게
서준에게는 너무도 소중해 보였다.


저녁에 혼자 골목길을 걷다가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그냥 네가 저렇게 웃고 있어 주는 게 좋아.’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세계는 마음에 드십니까?”

서준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깔끔한 정장의 관리자.

여전히 잿빛 눈동자로
서준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가장 순수하고 깨끗했던 순간으로 돌아왔습니다.”

관리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이 세계에서라면
영원히 이렇게 살 수도 있지요.”

서준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영원히…?”

“네.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시간은 멈춘 듯 천천히 흐를 겁니다.
그리고 지유 역시
언제나 저렇게 웃고 있을 겁니다.”


그 말은
너무도 달콤했다.

다시는 지유를 잃지 않아도 되는 삶.
언제까지고 저 웃는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삶.

하지만
서준의 가슴은 묘하게 서늘해졌다.

‘영원히…
늘 어린 지유를…
저렇게만 보고 살라는 뜻인가.’


서준은 조용히 물었다.

“만약…
내가 그렇게 원하지 않는다면요?”

관리자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떠나
또 다른 선택을 해야겠지요.”

“다른 세계로 가면…
지유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건 당신의 간절함에 달렸습니다.”


서준은 다시 운동장을 바라봤다.

저기서 친구들과 소리 내 웃고 있는 지유.
마치 세상에 근심 하나 없는 사람처럼.

‘저 모습도 좋지만…
나는 결국,
지유가 내 옆에서 함께 나이를 먹고,
같이 삶을 살아가는 걸 보고 싶어.’


서준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전…
여기서 영원히 머물고 싶지 않아요.”

관리자는 잠시 서준을 바라보다
조용히 웃었다.

“좋습니다.
당신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군요.”


그러자
운동장 저 멀리서
지유가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고
서준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왔다.

서준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지유…?”

그런데 지유는 서준 앞에서 멈추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그리고는 다시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서준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슬프지 않았다.

‘다음엔…
너랑 같은 나이로,
같은 시간에 살아보고 싶다.’

그때
관리자가 손을 내밀었다.

“준비되셨습니까?”

서준은 주저 없이
그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