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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기 위해, 다시

〈너를 찾기 위해, 다시〉 17부. 작고 평범한 기적들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29.

《너를 찾기 위해, 다시》

17부. 작고 평범한 기적들


밴드 연습이 끝난 날,
서준과 지유는 연습실에서 나와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연습실 바로 옆에는
20년도 넘은 듯 보이는 허름한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우리… 저기 가볼래요?”

지유가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준은 의외라는 듯 웃었다.

“저기요?
진짜 오래된 데인데… 맛은 있어요.”

“그럼 됐죠.
오늘 배 엄청 고파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름 냄새와 함께 조금 퀴퀴한 공기가 훅 들어왔다.

허름한 테이블,
반쯤 벗겨진 벽지,
그리고 구석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까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짜장면 두 그릇 주세요!”

지유가 당차게 말했다.
서준은 피식 웃었다.


잠시 뒤,
시커먼 짜장면이 가득 담긴 그릇이 두 개 나왔다.

서준은 젓가락을 집어 들며 말했다.

“여기 단무지가 맛있어요.
달달하거든요.”

“아, 진짜요?
그럼 많이 주세요.”

서준은 단무지 그릇을 슬며시 밀어줬다.

지유는 짜장면을 크게 비벼
면발을 한 가득 집어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진짜 맛있다!”

“그쵸?
여기 은근히 유명해요.”


둘은 한참 동안
그 낡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짜장면을 먹으며 웃었다.

옆 테이블에는 혼자 술을 마시는 아저씨가 있었고,
주방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서준은 문득
지유가 짜장면 국물을 입가에 살짝 묻히는 걸 보고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었다.

지유가 조금 민망하게 웃었다.

“아…
부끄럽다.”

“귀여워요.”


식당을 나오자
밤공기가 서늘했다.

서준은 주머니에서 얇은 패딩을 꺼내
지유에게 살며시 입혀줬다.

“이거 입어요.
오늘 밤은 좀 춥네요.”

“괜찮은데…”

“괜찮아도 입어요.”

지유는 그 말에 작게 웃으며
두 손으로 패딩을 꼭 여몄다.


그 길로 둘은
근처 강가까지 천천히 걸었다.

작은 다리 위에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하나씩 들었다.

‘칙——’
맥주를 따르는 소리가
밤공기 속에서 유난히 선명했다.

서준은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가득했다.


“좋다…”

지유가 작게 중얼였다.

“응?”

“그냥…
오늘 하루가 너무 좋다고요.”

서준은 캔맥주를 손에 쥔 채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열광하는 관객들도
지금 이 조용한 순간만 못했다.


“있잖아요.”

지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사실…
사람 많은 데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왜요?”

“뭔가…
자꾸 나만 혼자인 것 같아서.”

서준은 가슴이 찌르르하게 저렸다.

지유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캔맥주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근데 오늘은…
하루 종일 사람 많은데 있었는데도
하나도 안 외로웠어요.”


서준은 아무 말 없이
지유의 손등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지유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나도…
오늘 진짜 좋았어요.”

지유는 서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웃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서준은 조심스레 지유의 손을 잡았다.

지유가 놀란 듯 움찔했지만
곧 살며시 손가락을 깍지 껴왔다.

서준은 그 온도가 너무 따뜻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번에는…
정말 사람답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이 느린 속도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