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찾기 위해, 다시》
17부. 작고 평범한 기적들
밴드 연습이 끝난 날,
서준과 지유는 연습실에서 나와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연습실 바로 옆에는
20년도 넘은 듯 보이는 허름한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우리… 저기 가볼래요?”
지유가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준은 의외라는 듯 웃었다.
“저기요?
진짜 오래된 데인데… 맛은 있어요.”
“그럼 됐죠.
오늘 배 엄청 고파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름 냄새와 함께 조금 퀴퀴한 공기가 훅 들어왔다.
허름한 테이블,
반쯤 벗겨진 벽지,
그리고 구석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까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짜장면 두 그릇 주세요!”
지유가 당차게 말했다.
서준은 피식 웃었다.
잠시 뒤,
시커먼 짜장면이 가득 담긴 그릇이 두 개 나왔다.
서준은 젓가락을 집어 들며 말했다.
“여기 단무지가 맛있어요.
달달하거든요.”
“아, 진짜요?
그럼 많이 주세요.”
서준은 단무지 그릇을 슬며시 밀어줬다.
지유는 짜장면을 크게 비벼
면발을 한 가득 집어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진짜 맛있다!”
“그쵸?
여기 은근히 유명해요.”
둘은 한참 동안
그 낡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짜장면을 먹으며 웃었다.
옆 테이블에는 혼자 술을 마시는 아저씨가 있었고,
주방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서준은 문득
지유가 짜장면 국물을 입가에 살짝 묻히는 걸 보고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었다.
지유가 조금 민망하게 웃었다.
“아…
부끄럽다.”
“귀여워요.”
식당을 나오자
밤공기가 서늘했다.
서준은 주머니에서 얇은 패딩을 꺼내
지유에게 살며시 입혀줬다.
“이거 입어요.
오늘 밤은 좀 춥네요.”
“괜찮은데…”
“괜찮아도 입어요.”
지유는 그 말에 작게 웃으며
두 손으로 패딩을 꼭 여몄다.
그 길로 둘은
근처 강가까지 천천히 걸었다.
작은 다리 위에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하나씩 들었다.
‘칙——’
맥주를 따르는 소리가
밤공기 속에서 유난히 선명했다.
서준은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가득했다.
“좋다…”
지유가 작게 중얼였다.
“응?”
“그냥…
오늘 하루가 너무 좋다고요.”
서준은 캔맥주를 손에 쥔 채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열광하는 관객들도
지금 이 조용한 순간만 못했다.
“있잖아요.”
지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사실…
사람 많은 데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왜요?”
“뭔가…
자꾸 나만 혼자인 것 같아서.”
서준은 가슴이 찌르르하게 저렸다.
지유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캔맥주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근데 오늘은…
하루 종일 사람 많은데 있었는데도
하나도 안 외로웠어요.”
서준은 아무 말 없이
지유의 손등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지유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나도…
오늘 진짜 좋았어요.”
지유는 서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웃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서준은 조심스레 지유의 손을 잡았다.
지유가 놀란 듯 움찔했지만
곧 살며시 손가락을 깍지 껴왔다.
서준은 그 온도가 너무 따뜻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번에는…
정말 사람답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이 느린 속도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