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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무대

우리의 작은 무대 - 10부. 하은의 솔로 오디션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9.

《우리의 작은 무대》

10부. 하은의 솔로 오디션


“야, 우리 진짜 대박 아니냐?”

준호는 상금으로 새로 산 드럼 스틱을 한참 들여다보다 환하게 웃었다.
그 스틱은 이제 막 포장을 뜯은 듯 반짝였고, 손에 쥐자마자 ‘이제 우리도 좀 프로 같다’ 싶은 묘한 설렘을 줬다.

유리도 새로 맞춘 베이스 앰프 앞에서 얼굴이 한껏 밝아 있었다.
그 앰프에서는 지직대는 소리 하나 없이 깨끗하고 묵직한 저음이 흘러나왔다.
하은은 그걸 듣고 피아노 건반을 치며 작게 탄성을 질렀다.

“우와… 유리야, 너 이제 진짜 무슨 공연장 같은 소리 난다.”

민준은 기타를 메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이제 슬슬 우리도 동네 밴드는 아닌 것 같네.”

준호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다음은 전국 대회다! 거기서도 우리 이름 박자!”

그 소리에 유리도 작게 웃었다.

“그때도… 이렇게 네 명이면 좋겠다.”

하은이 아무 말 없이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민준과 눈이 마주쳤다.
민준은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하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응. 꼭 그래야지.”


그날 밤, 민준은 방에 누워 한참을 핸드폰 화면만 바라봤다.
갤러리엔 준호가 찍어준 사진이 가득했다.
대회에서 3등 상장을 들고 네 명이 머리를 맞댄 사진,
연습실에서 까르르 웃으며 장난치는 사진,
그리고 하은이 피아노 앞에서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진.

그 사진 속 하은의 옆얼굴을 보다 민준은 괜히 가슴이 쿡 찔렸다.

‘하은이는 언제까지 우리랑 있을까…’

그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안해졌다.
그때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 <하은> 내일 연습실 조금 일찍 와줄래?

민준은 조금 놀라서 답장을 보냈다.

  • 왜?

  • 할 얘기 있어서.


다음 날, 학교가 끝나고 음악실에 들어서자 하은이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었다.
햇빛이 창문 너머로 들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민준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왔어?”

하은이 피아노 뚜껑을 천천히 닫았다.
표정이 조금 심각했다.

“왜, 무슨 일 있어?”

하은은 손가락을 맞잡았다.
그리고 잠시 말없이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서울에서 오디션 보라는 연락 받았어.”

순간 민준의 머리가 멍해졌다.

“오디션?”

“응. 저번에 너 몰래 낸 영상 있잖아.
우리 대회 영상이랑 내가 혼자 부른 거.
그걸 본 사람이 연락했어.”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은은 괜히 웃어보였다.

“웃기지? 나도 농담인 줄 알았어.
근데 진짜더라.
서울에 있는 꽤 큰 기획사야.”

민준은 기타 케이스를 내려놓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서… 갈 거야?”

하은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 조용한 동작이 더 큰 대답 같았다.


그날 저녁, 연습실엔 이상한 공기가 맴돌았다.
하은은 어색하게 피아노 앞에 앉았고, 유리는 가끔 하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준호만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드럼을 두드리며 분위기를 띄우려 했다.

“야야, 우리 내일도 똑같이 하자.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하은이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민준은 기타 줄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연습을 멈췄다.

“나 오늘 조금만 할게.”


연습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하은이 민준을 불렀다.

“민준아.”

민준은 걸음을 멈췄다.
하은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너 왜 그래?”

“뭘.”

“너 나 피하는 거 같아.”

민준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네가 가면 우리 어떡하냐.”

하은은 작게 웃었다.
하지만 금세 눈가가 붉어졌다.

“나도 그게 제일 무서워.
근데 이번 기회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작게 말했다.

“그래… 가.
근데… 우리 잊지 마.”

하은은 눈물이 맺힌 눈으로 민준을 꼭 안았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민준은 그 품에서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하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 향이 이상하게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며칠 뒤, 하은은 오디션을 보러 서울로 올라갔다.
그날 민준은 하루 종일 기타를 잡지 못했다.
음악실 문을 열어볼까 하다가, 괜히 혼자 있을 유리와 준호가 더 불편할까 봐 돌아서기도 했다.

밤이 되자 핸드폰 화면만 수십 번 들여다봤다.
결국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메시지가 왔다.

  • <하은> 붙었어.

민준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숨이 가빠왔다.


다음 날 연습실에서 하은을 만났다.
하은은 조심스레 웃었다.

“근데… 나 바로 가는 건 아니래.
좀 더 연습하면서 보자고 했어.”

준호가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너 나중에 가수 돼서 우리 안 알아보는 거 아냐?”

“그럴 리가 있냐!”

하은은 준호를 살짝 치며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도 긴장과 두려움이 엿보였다.

유리는 조용히 말했다.

“하은이 가도… 우리 계속 연습하자.
나중에 다시 네가 오면 그때 더 멋지게 보여주자.”

하은이 그 말을 듣고 유리에게 꼭 안겼다.


연습은 어색했지만 계속됐다.
민준은 기타를 치며 하은의 목소리를 더 깊이 새기려 애썼다.
이 노래가 혹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손끝까지 스며들었다.

곡이 끝나자 민준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하은아.”

“응?”

“우리 노래할 때만큼은… 아무 걱정 하지 마.”

하은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눈물이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민준은 집에 가는 길에 조용히 이어폰을 끼고 ‘우리의 작은 무대’ 연습 녹음을 들었다.
하은의 목소리가 조용히 귓가를 스쳤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너와 내가
같은 노랠 부르고 있으니까…’

민준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네가 어디에 있어도, 이 노래만큼은 계속 너랑 같이 부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