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작은 무대》
12부. 첫 방송 출연
학교 점심시간, 네 사람은 교실 복도 창가에 모여 있었다.
하은이 흥분된 목소리로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야, 이거 봐! 우리 대회 영상이 지역 방송국 SNS에 올라갔었나 봐.
거기 담당자가 우리 학교로 연락했대!”
민준은 놀라서 화면을 들여다봤다.
‘○○청소년밴드페스티벌’ 계정이었다.
그 밑엔 ‘스페이스러브 - 우리의 작은 무대’라고 적힌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좋아요가 무려 2천 개가 넘었고, 댓글엔 ‘이 밴드 진짜 순수해서 좋다’, ‘보컬 목소리 미쳤다’, ‘기타 솔로 감동적’ 같은 말이 줄을 잇고 있었다.
준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야, 진짜 우리 맞아?
나 완전 스타 된 기분인데?”
유리도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작게 웃었다.
“댓글… 다 너무 좋다.”
하은이 손을 꼭 모았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우리한테 지역 뉴스 인터뷰 오라고 했대.
거기서 노래도 한 곡 라이브로 하자고.”
순간 민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설렘이었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겁도 났다.
학교 축제 때 완전히 무너졌던 기억이 또 어슴푸레 떠올랐다.
하지만 하은은 그저 행복한 얼굴이었다.
“우리 이제 진짜 시작인가 봐.”
방송국에서 온 연락을 확인한 뒤, 네 사람은 음악실에 모였다.
하은은 피아노 앞에 앉아 여전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잘하면 더 많은 공연도 들어올 거야.
우리 앞으로 더 멀리 갈 수도 있잖아.”
준호가 드럼에 앉아 신나게 스틱을 두드렸다.
“오케이! 나 이제 연예인 병 걸릴 준비됐다.”
유리는 부끄러운 듯 작게 웃었다.
“방송이라니… 진짜 신기하다.”
민준은 가만히 기타 줄을 만지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엔 절대 틀리지 말자.
우리 진짜 잘해야 한다.’
방송국 출연 당일.
네 사람은 일찍부터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차를 한 대 빌려 타고 방송국으로 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은은 머리를 살짝 말아 올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화장도 했다.
민준은 그 모습을 보고 괜히 가슴이 뛰었다.
“너… 뭐야. 오늘 왜 이렇게 신경 썼냐.”
하은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뭐래. 오늘 방송인데 당연히 좀 꾸미지.”
“아… 그렇지.”
민준은 머쓱하게 기타 케이스를 다시 고쳐 멨다.
방송국에 도착하자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스튜디오 안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머리 위에는 커다란 조명들이 바쁘게 돌아갔다.
카메라가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며 세팅되고 있었다.
하은은 그 모습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진짜 방송국이네…”
준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나 오늘 집 가면 우리 엄마 울겠다.”
유리는 긴장된 듯 가만히 베이스 케이스를 꼭 쥐었다.
리허설이 시작됐다.
방송국 음향감독이 네 사람에게 간단히 음향 체크를 요청했다.
“보컬님 마이크 테스트 좀 해볼게요.”
하은이 작게 노래를 불렀다.
목소리가 스튜디오 안에 가득 퍼졌다.
민준은 그 소리를 듣고 살짝 긴장이 풀렸다.
‘괜찮아.
우리 언제나처럼 하면 돼.’
드럼도, 베이스도, 기타도 음을 맞춘 뒤 감독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좋아요.
조금 있다가 라이브 들어갈게요.”
대기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자 네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야… 나 손 봐봐.”
준호가 손을 내밀자, 손끝이 살짝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너만 그러냐.
나 지금 심장 터질 거 같아.”
하은이 그렇게 말했지만, 민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리는 숨을 고르며 가만히 베이스를 바라봤다.
“그래도… 우리가 만든 노래잖아.
우리 얘기니까… 괜찮을 거야.”
유리의 말에 민준은 작게 웃었다.
“맞아.
우리 노래니까.”
드디어 라이브 순서가 다가왔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붉은 불빛이 켜졌다.
‘ON AIR’라고 적힌 작은 전광판이 반짝였다.
하은이 작게 중얼거렸다.
“간다.”
민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기타를 쥐었다.
카메라가 네 사람을 향해 움직였다.
사회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은 ○○고등학교에서 온 밴드 ‘스페이스러브’입니다.
이 친구들이 최근 지역 청소년 밴드 페스티벌에서 상도 받았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직접 만든 노래를 들려주신다고 해요.”
하은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저희가 만든 노래 제목은 ‘우리의 작은 무대’입니다.”
준호가 가볍게 드럼 스틱을 두드렸다.
유리가 숨을 고르고 베이스 줄 위에 손을 올렸다.
하은이 마이크를 잡으며 민준을 바라봤다.
민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코드가 울렸다.
낯선 스튜디오, 수많은 카메라와 조명,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만 지나자 음악실에서 연습할 때와 똑같았다.
하은의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너와 내가
같은 노랠 부르고 있으니까…”
민준은 눈을 감았다.
손끝에서 울리는 기타 소리가 너무 익숙했다.
옆에서 들려오는 유리의 베이스, 뒤에서 단단히 박자를 잡아주는 준호의 드럼,
그리고 하은의 목소리가 하나로 엮였다.
곡이 끝나자 스튜디오 안에 박수가 울렸다.
카메라 뒤 스태프들까지 손뼉을 치고 있었다.
하은이 살짝 눈물을 훔쳤다.
촬영이 끝난 뒤, 대기실에 돌아온 네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야… 우리 진짜 방송 나왔다.”
하은이 말했다.
유리는 작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대도 좋았지만…
오늘은 진짜 우리가 하나라는 게 더 느껴졌어.”
준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나 방송 나가서 실수할까 봐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민준은 피식 웃었다.
“근데 너 되게 잘했어.”
하은이 준호의 팔을 톡 치며 말했다.
“맞아.
네 드럼 없었으면 오늘 완전 허전했을 거야.”
준호는 장난스레 목소리를 깔았다.
“아휴… 내가 없으면 너희 뭐 하고 살래.”
방송국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민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밤이 깊어 도로엔 가로등 불빛만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하은이 조용히 말했다.
“민준아.”
“응?”
“오늘 너 진짜 멋있었어.”
민준은 고개를 돌렸다.
하은은 살짝 웃었다.
“네 기타 소리 들으니까 괜히 울컥했어.”
민준은 괜히 창밖을 다시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너도.
너 노래 없으면 우리 아무것도 아니야.”
하은은 그 말을 듣고 살짝 어깨를 기대왔다.
민준은 그 체온이 묘하게 편안했다.
그날 밤, 네 사람은 각자 방에서 핸드폰을 붙들고 같은 영상을 보고 있었다.
조금 전 촬영됐던 방송국의 유튜브 클립이었다.
화면 속에서 하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고,
민준의 기타, 유리의 베이스, 준호의 드럼이 하나로 이어졌다.
하은은 방에서 혼자 화면을 보다가 결국 눈물을 훔쳤다.
유리는 작게 웃으며 화면을 캡처해 폰 배경으로 저장했다.
준호는 영상 댓글에 ‘우리 동네 밴드인데 이 친구들 진짜 잘한다’는 말을 보고 괜히 뿌듯해했다.
민준은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우린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