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작은 무대》
14부. 흔들리는 마음
○○읍 가을 축제가 끝난 이후, 스페이스러브에게 더 많은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인근 중소 도시에서 열리는 벚꽃 축제, 농산물 박람회, 청소년 문화 페스티벌 같은 곳에서
연주를 해 달라는 섭외 요청이 줄줄이 들어왔다.
하은은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환해졌다.
“얘들아, 이제 우리 진짜 바빠진다!
다음 달에만 벌써 세 군데 공연이야.”
준호는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하… 나 이제 싸인 연습해야겠다.”
유리는 조용히 웃으면서도 살짝 들뜬 얼굴이었다.
민준도 처음엔 마냥 좋았다.
연습실에 들어서면 조금 더 단단해진 팀의 사운드가 자랑스러웠다.
작은 음악실이 더 이상 답답하지 않았다.
그곳은 언제나 네 사람의 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나 무대가 커질수록 민준의 마음 한구석엔 작은 그림자가 자랐다.
공연이 끝난 뒤 SNS에 올라오는 영상 댓글들,
‘기타 솔로 미쳤다’, ‘밴드 합 너무 좋아요’ 같은 칭찬이 쏟아질 때도
민준은 혼자 그 댓글들을 수십 번씩 읽으며 괜히 초조해졌다.
‘다음엔 더 잘해야 할 텐데.
이번에는 조금 삐끗했는데 혹시 들렸을까.’
밤이 되면 더 심했다.
이어폰을 끼고 공연 영상을 돌려보다가
자신이 박자를 조금 밀린 순간, 피킹이 헛돌았던 순간이 나오면
괜히 숨이 막혔다.
며칠 뒤, 연습실에서 민준은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연습했다.
기타를 세게 치다 줄이 살짝 튕겨져서 잡음이 나자 얼굴이 굳었다.
“야, 민준아. 괜찮아. 한 번 더 가자.”
준호가 다독였지만 민준은 대답도 없이 기타 줄을 내려다봤다.
하은이 살짝 민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좋아.”
“충분히 좋아…?”
민준은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아냐.
난 더 잘해야 돼.”
그날 연습은 어딘가 어색하게 끝났다.
밤이 되자 민준은 방에서 혼자 기타를 꺼냈다.
앰프도 켜지 않고 그냥 생으로 소리를 들었다.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뭘 해도 거슬렸다.
‘왜 이렇게 더럽게 치지…
그냥 박자나 제대로 맞추자…’
결국 기타를 내려놓고 침대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복잡했다.
‘계속 이렇게 부족하면 어떡하지?
언젠간 다 티 날 텐데.’
민준은 결국 밤늦게 조용히 방을 나와 동네를 걸었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이어졌다.
차가운 가을 공기가 폐를 타고 들어갔다.
그때 문득, 어디선가 작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소리를 따라 걷다가 학교 앞 음악실 창문 밑에 멈췄다.
창문 안에는 하은이 혼자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그 목소리는 작았다.
마치 누군가를 위해 부르는 자장가 같았다.
민준은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그 목소리에 가만히 기대 섰다.
한참을 그렇게 듣다가, 민준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하은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민준아… 너 어떻게 여기…”
“그냥… 걷다가.”
민준은 피아노 옆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하은은 민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무슨 일 있었어?”
민준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나… 무서워.”
하은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우리 점점 커지잖아.
무대도, 관객도, 기대도…
근데 나는 아직도 축제 때 박자 놓치던 애 같아.”
민준은 고개를 떨궜다.
“언젠간 들킬까 봐 무서워.
내가 사실은 별거 아닌 사람이라는 거.”
하은은 피아노에서 손을 떼더니, 조용히 민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살며시 그의 손을 잡았다.
“근데… 너는 별거야.”
민준은 고개를 들어 하은을 바라봤다.
“너 없으면 우리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노래는 너 기타로 시작하고, 네가 박자 잡아주니까 다 돌아가는 거야.”
민준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조금 떨렸다.
“그냥… 난 너처럼 노래로 다 표현 못 해서 답답해.”
그러자 하은은 장난스럽게 민준의 팔을 툭 쳤다.
“바보야.
너 노래는 못 해도 기타로 다 말하고 있거든?
난 네 기타 들으면 내 심장도 같이 뛰어.”
두 사람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었다.
하은은 민준의 손을 살짝 더 꼭 잡았다.
“있잖아, 민준아.
우리 앞으로 더 큰 무대 서도, 너 그런 생각 들면 꼭 말해.”
“왜.”
“그럼 내가 또 이렇게 손 잡아줄 거니까.”
민준은 그 말을 듣고 결국 작게 웃었다.
그리고 하은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겨 이마를 맞댔다.
“약속해라.
앞으로도 계속.”
하은은 피식 웃으며 속삭였다.
“응. 약속.”
그날 이후, 민준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적어도 혼자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연습하다 실수하면 하은은 괜찮다고 웃어주었고,
유리는 박자 맞출 때 살짝 눈짓을 해주며 신호를 주었다.
준호는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드럼을 치며 “형 따라오라구요~” 하고 장난쳤다.
민준은 그게 얼마나 큰 힘인지 새삼 깨달았다.
밤늦게 연습실에서 네 사람은 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하은이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이렇게 평생 음악하면서 살면 좋겠다.”
준호가 팔베개를 하고 말했다.
“근데 솔직히 나중에 다들 일하러 가고 하면 못 만나겠지?”
유리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난 계속 할 거야.
너희만 한다면.”
민준은 작게 웃었다.
“야, 우리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은이 고개를 돌려 민준을 바라봤다.
“죽을 때까지.”
그리고 피식 웃으며 속삭였다.
“좀 오글거려도… 난 진심이야.”
민준은 아무 말 없이 하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우리 이렇게 계속 가자.
조금 흔들려도, 무서워도… 같이니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