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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무대

우리의 작은 무대 - 15부. 더 큰 대회, 더 큰 시련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12.

《우리의 작은 무대》

15부. 더 큰 대회, 더 큰 시련


겨울 초입, ○○도청 주최의 ‘청소년 뮤직 페스티벌’ 모집 공고가 났다.
작년에만 해도 이 대회엔 도 전역에서 온 고등학교 밴드가 수십 팀 몰려들어,
웬만큼 준비되지 않으면 예선에서 바로 탈락하기 일쑤였다.

하은이 그 소식을 들고 음악실로 달려왔을 때,
민준은 솔직히 조금 주저했다.

“우리… 거기 나가도 돼?
지난번 같은 축제 무대랑은 차원이 다르잖아.”

하은은 민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노래 좋잖아.
더 많은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싶어.
그리고… 거기 가야 우리도 더 성장할 것 같아.”

준호는 이미 마음이 반쯤 넘어가 있었다.

“야, 일단 붙기만 하면 무대가 도청 대강당이라잖아.
조명도 엄청나고, 음향도 프로들이 한다더라.”

유리는 살짝 고민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도전해보자.”

민준은 긴 한숨을 내쉰 뒤, 기타 줄을 가만히 눌렀다.

“좋아.
그 대신 이번엔 진짜 죽어라 연습해야 한다.”


예선 영상 접수를 위해 네 사람은 학교 강당을 빌렸다.
학교 축제 때 썼던 조명과 음향을 다시 꺼내,
조촐하지만 나름대로 무대 느낌을 냈다.

하은은 마이크를 잡은 손이 살짝 떨렸다.
민준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괜찮아.
우리 노래잖아.”

첫 코드가 울리고, 노래가 시작됐다.
조금은 떨리고, 또 조금은 서툴렀지만
분명히 그들만의 색이 있었다.


며칠 뒤, 합격 문자.
하은은 문자 화면을 보자마자 눈이 커졌다.

“붙었어!
우리 예선 통과했어!”

민준은 이상하게 가슴이 뻐근했다.
기뻤지만 동시에 더 큰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준호는 하은을 번쩍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야! 이제 진짜다!”

유리는 얼굴이 빨개지며 작게 웃었다.


도청 대강당 무대는 민준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컸다.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조명, 엄청난 PA 스피커,
그리고 수십 명의 다른 밴드 멤버들이 각자 악기를 점검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은도 그걸 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프로들 같다…”

준호는 의기양양했지만, 손에 잡은 스틱이 약간 흔들렸다.

“야, 우리도 오늘부터 프로야.”

유리는 긴장한 얼굴로 악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준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번엔… 절대 망치지 말자.’


리허설에서부터 민준은 마음이 바빴다.
음향 담당 엔지니어가 계속 이런저런 주문을 했다.

“기타 조금만 줄이고… 네, 다시 쳐보세요.”

“베이스는 저음 살짝만 빼세요.”

“보컬, 모니터에 리버브 좀 넣을까요?”

하은은 “네…” 하고 대답했지만, 평소보다 목소리가 작았다.
유리는 헤드폰을 빼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민준은 긴장된 손가락을 숨기려 일부러 더 기타를 두드렸다.


드디어 공연 순서.
대회는 객석에 500명 넘게 앉아 있었고,
앞쪽 심사위원석에는 지역 뮤직 아카데미 교수들과 기획사 관계자들이 앉아 있었다.

하은은 무대에 오르기 전 민준에게 작게 속삭였다.

“우리 잘할 수 있지?”

민준은 아무 말 없이 하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꼭 쥐어줬다.


첫 코드.
민준의 손이 살짝 떨렸다.
준호가 스틱으로 카운트를 넣고, 노래가 시작됐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하은의 목소리가 처음에 조금 떨리더니,
후렴에선 확실히 힘을 얻었다.
민준도 그제야 숨을 내쉬며 기타를 더 세게 쳤다.

그런데 2절에서, 준호가 잠깐 박자를 밀렸다.
그 작은 실수는 유리의 베이스에 전달됐고,
민준의 손끝까지 따라왔다.

한두 박자 어긋난 리듬이 재빨리 복구되긴 했지만,
민준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틀렸다… 들켰을까?’


곡이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가 났다.
하지만 민준은 그 박수가 축하가 아니라 위로 같았다.

무대 뒤에서 장비를 정리할 때, 준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야… 미안하다.
내가 거기서 좀 밀렸어.”

민준은 억지로 웃었다.

“괜찮아. 티 안 났어.”

하은도 “응, 우리 괜찮았어.” 하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자신이 없었다.


결국 스페이스러브는 수상하지 못했다.
결과 발표에서 3등 팀이 호명될 때까지,
하은은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하듯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하은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야.”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가가 붉어졌다.
준호는 스틱을 돌리며 괜히 바닥을 보고 있었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이 너무 먹먹했다.


그날 밤, 민준은 방에서 기타를 들고 주저앉았다.
손가락이 줄을 살짝 눌렀지만, 아무 음도 내지 않았다.

‘우리가 부족해서 그래.
내가 더 잘했으면…’

그러다 문득, 음악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하은이었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민준은 고개를 떨궜다.

“나 때문에 진 거 같아.”

“바보야.”

하은은 민준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기타를 살며시 빼앗았다.

“이 노래 네가 만들었잖아.
우리가 지금까지 온 것도 네가 있어서고.”

하은은 기타를 안고 한 줄을 조심스럽게 튕겼다.
그 작은 소리가 음악실을 가득 채웠다.

“나는 너 없으면 이 노래 못 불러.
그러니까… 다음엔 더 잘하면 되지.”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은의 눈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가자, 민준아.
우리 아직 하고 싶은 거 많잖아.”

민준은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그리고 하은이 쥔 기타를 살며시 다시 받아 들었다.

“응.
같이 가자.”


다음 날, 네 사람은 다시 음악실에 모였다.
준호는 “나 어제 밤에 드럼 패드 미친 듯이 쳤다.”며 웃었다.
유리는 “나도 베이스 연습 더 많이 할래.” 하고 작게 말했다.

하은은 피아노 앞에 앉아 고개를 돌렸다.

“우리 다시 처음처럼 해보자.”

민준은 기타를 매고, 손가락을 줄 위에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첫 코드를 눌렀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우린 아직도, 같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