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작은 무대》
17부. 다시 무대 위에서
봄이 오자, 도청 주최의 청소년 밴드 페스티벌은 더 화려한 포스터를 걸고 참가팀을 받기 시작했다.
하은은 포스터를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해 두고 매일 들여다봤다.
“우리 이름도 저기 걸리면 좋겠다.”
그 말에 민준은 피식 웃었다.
“야,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
준호는 스틱을 돌리며 의욕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 한 번 깨져봤으니까, 이제 진짜 무서울 거 없지.”
유리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엔 우리 진짜 잘할 수 있어.”
연습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민준은 기타를 하루에 네 시간씩 쳤다.
집에서 밤늦게까지 연습하다 손끝이 피가 살짝 맺히기도 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진짜 제대로 보여주자.’
하은은 성대를 혹사하지 않으려고 목 관리에 더 신경 썼다.
학교 매점에서 탄산음료를 사려다도 다시 돌려놓고,
늘 따뜻한 물을 들고 다니며 작게 허밍을 했다.
“너 완전 프로 같다.”
준호가 그렇게 놀리자 하은은 웃었다.
“프로가 돼야지.
우리 이제 그런 꿈 꿔도 되잖아.”
준호도 드럼 연습실을 따로 빌려 연습했다.
학교 음악실이 닫히면 혼자 주유소 알바 마치고 동네 드럼 연습실에 가서
심벌 하나, 톰 하나 더 정밀하게 맞추는 연습을 했다.
유리는 조용히 연습 노트를 새로 만들었다.
한 줄 한 줄, 박자를 세며 ‘내가 이번엔 박자 흔들리지 않겠다’ 하고 적었다.
때론 새벽까지 손가락이 저릿저릿할 때까지 연습을 했다.
드디어 대회 전날.
리허설을 위해 도청 대강당 무대에 다시 섰다.
지난번 실패했던 바로 그 무대였다.
하은은 무대를 바라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상하다…
저번엔 여기가 그렇게 무서웠는데.”
민준은 옆에서 살짝 웃었다.
“나도.
근데 이번엔 이상하게 더 설렌다.”
리허설에서 첫 곡을 시작했다.
조명이 켜지자 민준의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하은이 피아노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 눈빛 하나에 민준은 숨을 고르고 기타를 쳤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하은의 목소리가 무대 위를 가득 채웠다.
지난번보다 훨씬 단단했다.
유리의 베이스도 흔들림 없이 깔렸고, 준호의 드럼은 더 깊어졌다.
곡이 끝나자 무대 매니저가 말했다.
“좋아요.
내일 이 느낌으로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무대를 내려오자 네 사람은 동시에 숨을 몰아쉬었다.
“야… 우리 방금 거 진짜 좋지 않았냐?”
준호가 환하게 웃었다.
유리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응…
하은이 노래 너무 좋았어.”
하은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희가 잘해줬으니까.
민준이 기타가 오늘 완전 더 촘촘했어.”
민준은 민망해서 기타 스트랩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작게 말했다.
“내일… 진짜 잘하자.”
그리고 대회 당일.
대기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른 학교 밴드 보컬들이 발성 연습을 하고 있었고,
기타리스트들은 진지하게 이펙터를 점검하고 있었다.
하은이 조용히 물병을 들었다.
손이 살짝 떨렸다.
민준은 그런 하은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괜찮아.
우리 언제나처럼 하면 돼.”
하은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응.”
드디어 무대에 오를 순서가 왔다.
조명이 켜지자 하은은 숨을 고르고 민준을 바라봤다.
민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가 스틱을 들어올렸다.
유리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첫 코드가 울렸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너와 내가
같은 노랠 부르고 있으니까…”
하은의 목소리가 무대 위를 가득 메웠다.
관객석엔 수백 명이 앉아 있었지만, 민준에겐 오직 세 사람만 보였다.
유리가 정확히 박자를 잡았다.
준호가 그 위에 단단히 드럼을 쳤다.
민준은 숨을 내쉬며 기타를 더 깊게 눌렀다.
그리고 후렴에서 하은이 민준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그 순간 민준은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곡이 끝나자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졌다.
누군가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 흔들었다.
하은은 눈가가 살짝 젖었지만, 환하게 웃었다.
무대 뒤로 내려오자 네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꼭 안았다.
“야… 나 오늘 진짜 행복했다.”
준호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유리는 눈물을 훔치며 작게 웃었다.
“우리… 잘했어.”
하은은 민준을 꼭 바라보았다.
“민준아.
너 없었으면 오늘 못 했어.”
민준은 작게 웃었다.
“우리 다 없으면 못 했어.
이건… 우리 넷 거니까.”
그날 밤, 네 사람은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시켜놓고 웃고 떠들었다.
하은은 계속 휴대폰으로 영상을 돌려보며 “우리 진짜 멋있다”를 연발했다.
민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엔 진짜… 무섭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 같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