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작은 무대》
19부. 서울에서의 첫 무대
봄이 완연해지자, 스페이스러브의 SNS 계정엔 공연 영상이 하나 둘씩 더 오르기 시작했다.
그 영상들엔 ‘지방 고등학교 밴드가 이렇게 순수하다니’, ‘자작곡 진짜 좋다’, ‘보컬 목소리 미쳤다’ 같은 댓글이 붙었고
팔로워도 천 명을 넘기더니, 어느 날 서울의 작은 라이브 클럽에서 연락이 왔다.
“○○홍대 라이브홀인데요.
SNS에서 영상 보고 연락드렸어요.
작은 청춘 밴드들을 소개하는 무대인데, 혹시 서울에 올라와서 공연 가능하실까요?”
하은이 그 문자를 읽고는 음악실에서 소리쳤다.
“얘들아! 우리 서울 가자!”
서울이라는 이름이 주는 울림은 달랐다.
하은은 신나서 연습실에서 하루 종일 노래를 불렀고,
준호는 “야, 나 서울 가면 닭갈비 먹는다.”며 들떴다.
유리는 조금 긴장했지만, 그 속에 설렘이 더 커 보였다.
민준도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왠지 모르게 숨 막히고 차가운 이미지였다.
그곳엔 자신보다 훨씬 잘하는 밴드가 셀 수 없이 많을 테고,
또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들통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자꾸 따라붙었다.
그래도 하은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우리 그냥 우리 노래하러 가는 거잖아.”
민준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올라가는 날, 네 사람은 아침 일찍 기차를 탔다.
기차 창문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봄 들녘이 묘하게 마음을 들뜨게 했다.
“야, 우리 진짜 서울 가네.”
준호가 창가에 이마를 대고 말했다.
하은은 반대편 좌석에서 베이스 케이스를 품에 안고 작게 웃었다.
“서울에서도 이거 들고 다니면 다들 우리 밴드인 줄 알겠지?”
유리는 가만히 창밖을 보다가 작게 말했다.
“우리 지금… 진짜 어디까지 갈까.”
민준은 가만히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기타를 잡던 손가락엔 굳은살이 더 두꺼워져 있었다.
‘어디까지 가든, 계속 같이 하고 싶다…’
홍대 라이브홀은 생각보다 훨씬 화려했다.
무대 위엔 반짝이는 조명과 스모그 머신이 있었고,
리허설을 준비하던 다른 밴드들은 전부 세련된 옷차림에,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하며 음향 엔지니어와 이야기했다.
하은은 살짝 움츠러들었지만,
준호가 괜히 장난스럽게 어깨를 툭 쳤다.
“야, 우리도 서울 왔다. 당당하자.”
민준은 그 말에 작게 웃었다.
그리고 기타 줄을 조심스럽게 튕겼다.
‘맞아.
우린 우리 노래하러 온 거니까.’
리허설 때 처음으로 서울 음향팀과 마주하자,
하은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모니터를 부탁했다.
“보컬 모니터 조금만 더 올려주세요…”
“넵, 올라갔습니다.
기타도 조금만 더 치워주실래요?
보컬 라인에 살짝 부딪히거든요.”
민준은 얼른 위치를 바꿨다.
서울에서조차 그렇게 세심하게 맞춰주는 모습에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드디어 첫 코드가 울렸다.
조명이 살짝 깜빡이며 무대 위로 비추자,
민준은 더 이상 지방 소도시에서 공연하던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정말 ‘어디에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무대 같았다.
공연은 저녁 8시에 시작됐다.
관객석엔 이미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있었고,
전부 이 밴드들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무대 뒤에서 하은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나 이상해.
우리 노래인데, 오늘은 더 떨려.”
민준은 살며시 하은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오늘도 우리 노래하러 온 거잖아.”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첫 코드가 울리고,
하은의 목소리가 홍대 작은 클럽 전체를 채웠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너와 내가
같은 노랠 부르고 있으니까…”
처음 보는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커플은 손을 맞잡고 리듬을 타며 미소를 지었다.
젊은 청춘들이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가끔 ‘와…’ 하는 숨소리를 냈다.
민준은 손끝이 이상하게 저릿저릿했다.
서울에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기타가 이렇게 크게 울리는 건 처음이었다.
곡이 끝나자 작은 공연장이지만 큰 박수가 터졌다.
하은은 숨을 헐떡이며 민준을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민준은 아무 말 없이 기타를 쥔 손을 더 꼭 쥐었다.
공연을 마치고 클럽 밖으로 나오니,
홍대 거리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밤늦게까지 문을 연 카페,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거리공연을 하는 또 다른 밴드들.
하은은 잠시 멈춰서 그 풍경을 바라봤다.
“야, 우리도 여기서 노래했어.”
“그러게.”
민준은 살짝 웃었다.
하은은 그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솔직히 서울 오면 너한테 조금 미안했어.”
“왜?”
“예전에 나 혼자 오디션 보러 왔을 때…
너 놓고 왔잖아.
근데 지금은… 우리 같이 와서 너무 좋아.”
민준은 하은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도.
같이 와서… 진짜 다행이다.”
그날 밤, 네 사람은 숙소에서 편의점에서 사 온 라면을 먹으며
작은 테이블에 모여앉았다.
준호가 웃으며 말했다.
“야, 우리 서울 무대 데뷔했다.
다음엔 어디냐? 부산? 제주?”
유리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어디든 같이 가면 괜찮을 거 같아.”
하은은 민준에게 살짝 기대며 말했다.
“맞아.
우리 같이 가면 어디든 괜찮아.”
민준은 그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우리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몰라도 괜찮다.
그냥 계속 이렇게 같이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