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작은 무대》
20부. 우리만의 노래를 남기다
서울에서의 공연은 분명 무언가를 바꿔놓았다.
SNS엔 서울 공연 영상을 찍어 올린 사람들의 짧은 영상들이 계속해서 올라왔고,
해시태그로 #스페이스러브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떤 댓글엔
‘홍대에서 우연히 본 밴드인데 목소리 너무 순수해서 울 뻔했다’
‘이 팀 노래 제목 뭔지 아시는 분… 꼭 다시 듣고 싶어요’
같은 글이 달렸다.
하은은 그 댓글들을 밤마다 읽으며,
휴대폰 화면을 꼭 쥔 채 가만히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 사람에게 작은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아직 데뷔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지역 뮤지션들의 공연과 영상을 기획해 주는 곳이었다.
“우리 공연 영상 보고 연락했대.
우리 노래로 뮤직비디오 한 번 찍어보고 싶다고…”
하은이 조심스레 말했다.
민준은 잠시 아무 말 없이 하은을 바라봤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진짜 우리 뮤비 찍는 거야?”
준호는 스틱을 허공에 던지며 소리쳤다.
“야! 이제 나 연예인병 걸려도 되냐?”
유리는 얼굴이 빨개져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찍으면…
엄마가 맨날 친구들한테 자랑하실 것 같아.”
하은은 웃으며 민준에게 말했다.
“우리도 드디어 우리 노래를 ‘영상’으로 남기는 거네.”
며칠 뒤, 작은 카메라팀이 학교로 찾아왔다.
촬영 콘셉트는 평소 음악실에서 연습하듯, 자연스럽게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카메라 감독이 말했다.
“처음엔 음악실에서 편하게 연습하는 느낌으로 가죠.
그리고 나중엔 학교 운동장 같은 데로 나가서 조금 뛰어놀기도 하고.”
하은이 긴장된 얼굴로 민준을 바라봤다.
“나 이상하면 어떡해…”
“야, 너가 제일 예쁠 텐데 뭐가 이상해.”
준호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 말에 하은은 조금 안심한 듯 웃었다.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가 돌고 있었지만, 네 사람은 정말 연습하듯 음악실에서 자리를 잡았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하은의 목소리가 카메라에 담겼다.
민준은 기타를 치면서 카메라를 살짝 의식했지만,
곧 하은이 자신을 보며 웃자 다시 연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유리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고 베이스를 눌렀다.
준호는 드럼을 치며 피식 웃었다.
촬영 중간, 감독이 말했다.
“좋아요.
이번엔 민준 씨 기타 솔로 들어가는 부분에서 하은 씨가 그냥 바라만 봐주세요.
되게 자연스러워요.”
하은은 멋쩍은 듯 웃었다.
“진짜요?
이상하지 않을까요?”
“아뇨, 진짜 좋아요.
되게 풋풋해 보여요.”
민준은 괜히 더 얼굴이 달아올랐다.
기타를 치며 하은과 눈이 마주쳤을 때,
순간 하은이 작게 웃었다.
‘아, 이거 평생 기억날 것 같다.’
촬영은 학교 운동장으로 이어졌다.
잔디 위에서 네 사람은 장난을 치며 뛰어다녔다.
준호가 갑자기 드럼 스틱을 마이크처럼 들고 하은에게 들이대며 장난을 치자
하은이 소리치며 웃고,
민준은 그런 두 사람을 휴대폰으로 찍다가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유리는 민준에게 장난스럽게 베이스 넥을 들이대며
“민준 씨, 오늘 기타 멋있었어요~” 하고 장난을 쳤다.
민준은 손을 흔들며 “나 그런 거 못 받아친다니까!” 하고 웃었다.
촬영이 끝나고 밤이 되자,
카메라팀은 퇴근했고, 네 사람은 다시 음악실에 남았다.
준호는 드럼에 앉아 살짝 스틱을 돌렸다.
“야, 오늘 진짜 연예인 된 기분이었어.”
유리는 의자에 앉아 살짝 미소지었다.
“근데… 우리 그냥 이렇게 계속 하고 싶어.”
하은은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얹고 작게 말했다.
“맞아.
뮤비도 좋고, SNS도 좋지만…
그냥 이렇게 네 명이 노래할 때가 제일 좋아.”
민준은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조금 뒤, 준호와 유리는 먼저 집에 가겠다고 나갔다.
음악실엔 민준과 하은만 남았다.
하은은 피아노 건반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너 있잖아.”
민준이 기타를 내려놓으며 하은을 바라봤다.
“응?”
“나는 사실 네가 처음 음악실에서 기타 치던 그날부터
계속 좋았어.”
민준은 그 말에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왜… 왜 이제 얘기해.”
“그냥…
우리 이렇게 오래 같이 할 줄 몰랐으니까.”
하은은 작게 웃었다.
민준은 조용히 하은 옆으로 갔다.
그리고 손을 살며시 잡았다.
“나도.
처음엔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기타만 치던 건데…
이젠 네 옆에서 치는 게 제일 좋아.”
하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조심스럽게 민준의 어깨에 살짝 기댔다.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민준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하은을 바라봤다.
“응.
계속 할 거야.
그리고 어디 가서라도… 네 노래 옆에 내 기타 있었으면 좋겠어.”
그날 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음악실 불을 끄고 나왔다.
밤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민준은 하은의 손을 꼭 잡은 채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 이 순간도 노래로 남기자.”
하은은 작게 웃었다.
“응.
우리의 작은 무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