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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무대

우리의 작은 무대 - 22부. 첫 앨범, 그리고 더 깊어진 우리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15.

《우리의 작은 무대》

22부. 첫 앨범, 그리고 더 깊어진 우리


EP 앨범 제작이 정식으로 확정되자,
스페이스러브 네 사람은 본격적으로 녹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학교 음악실은 어느새 작은 연습 스튜디오가 되었다.
하은은 더 이상 목을 혹사하지 않기 위해 하루 2시간 이상 노래 연습을 넘기지 않았고,
유리는 저음을 더 탄탄하게 깔기 위해 따로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준호는 스틱 잡는 각도부터 완전히 다시 잡았다.
마디 하나라도 정확하게 치고 싶어서, 손가락 테이핑을 몇 겹이나 두르며 연습했다.

민준은 밤마다 혼자 음악실에 남아 연습했다.
스마트폰 메트로놈 소리를 귀에 꽂고,
반복해서 같은 코드와 리프를 쳤다.

‘이번에는 진짜 우리 걸 제대로 남기는 거니까…’


첫 스튜디오 녹음 날.
작은 지하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공기부터가 달랐다.
벽에는 흡음재가 가득 붙어 있었고,
중앙 테이블에는 믹싱 콘솔과 작은 모니터들이 있었다.

하은은 살짝 긴장된 얼굴로 민준을 바라봤다.

“여기 진짜 스튜디오 같아…”

“진짜 스튜디오 맞거든.”

준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엔지니어가 웃으며 네 사람을 맞았다.

“오늘은 보컬 가이드랑 드럼 먼저 잡아볼게요.
준호 씨 준비되시면 들어가요.”


준호가 드럼 부스로 들어갔다.
유리와 하은, 민준은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야, 저기 안에 있으니까 더 프로 같지 않냐?”

하은이 작게 웃었다.

민준은 스틱을 쥔 준호가 살짝 긴장해 어깨를 움찔하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저놈도 긴장되긴 하나 보네.’


드럼 녹음이 시작됐다.
준호가 카운트를 넣고 첫 비트를 치자
컨트롤룸에 있는 스피커에서 그 소리가 단단하게 울렸다.

“좋아요. 한 번 더 가볼게요!”

엔지니어가 마이크를 눌러 말했다.

준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두 번째 테이크에서 아까보다 더 자신있게 드럼을 쳤다.

곡이 끝나자, 유리와 하은이 동시에 손뼉을 쳤다.

“좋았어!
우리 준호 오늘 완전 멋있는데?”

민준은 장난스럽게 유리에게 물었다.

“저거 네 남자친구냐? 왜 이렇게 좋아하냐.”

유리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니야…” 하고 작게 말했다.


다음은 하은의 보컬 가이드.
하은은 작은 부스 안에 들어가 헤드폰을 썼다.
그리고 숨을 고르고 마이크에 입을 댔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
민준은 기타를 만지던 손을 멈췄다.
유리는 고개를 들고 하은을 바라봤다.

그 목소리는 스튜디오의 스피커를 타고 더 맑게 들렸다.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그래서 더 떨리는 소리였다.


가이드 녹음이 끝나고 부스에서 나온 하은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 너무 이상하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방금 네 목소리 진짜 좋았어.”

민준이 작게 말했다.

하은은 민준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었다.


그날 저녁, 기타와 베이스 라인까지 가이드 녹음이 끝나자
엔지니어가 말했다.

“좋아요.
내일은 본 녹음 들어갈 테니까 오늘은 충분히 쉬세요.”

네 사람은 스튜디오를 나와 큰 숨을 내쉬었다.

“야… 나 오늘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준호가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유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오늘 이렇게 노래를 ‘진짜로’ 남겼어.”

하은은 민준 옆에서 피식 웃었다.

“맞아.
우리 진짜 노래하는 사람들이야.”


밤이 되자, 민준과 하은은 음악실에 단둘이 남았다.
민준은 기타를 치며 작은 멜로디를 만들고 있었다.
하은은 옆에서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너 오늘 녹음할 때 되게 멋있었어.”

하은이 작게 말했다.

민준은 기타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뭐가.”

“기타 칠 때…
너 표정 이상해지거든.
근데 나 그 표정 제일 좋아.”

민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하게 웃었다.

“야, 그러지 마.
창피하단 말이야.”


하은은 의자에서 살짝 몸을 돌리더니
민준 쪽으로 기댔다.

“있지, 나 요즘 하루 종일 생각해.
우리 진짜 어디까지 갈까.”

민준은 하은의 머리카락을 살짝 손가락으로 넘겼다.

“몰라.
근데 어디까지 가든 네 옆에서 기타 치고 있을 거야.”

하은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럼 나도 평생 네 옆에서 노래할래.”

민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살며시 하은의 얼굴을 감싸고 이마를 맞댔다.

“약속해라.”

“응.
약속.”


다음 날, 본격적인 본 녹음이 시작됐다.
하은은 더 집중하기 위해 아침부터 따뜻한 물을 들이켜며 목을 풀었다.
준호는 드럼 패드를 손에 꼭 쥐고 박자를 세었다.

민준과 유리는 콘솔룸에 앉아 하은을 바라봤다.
녹음 부스 안의 하은은 헤드폰을 쓰고, 눈을 감았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그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스피커로, 그리고 네 사람의 가슴으로 흘러들어왔다.

민준은 기타를 잡은 손에 천천히 힘을 줬다.

‘이 목소리 옆에 내가 있는 게 너무 좋다.’


녹음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엔지니어가 “좋아요. 오늘 여기까지 할게요.”라고 말했을 때
네 사람은 동시에 의자에 기대어 숨을 내쉬었다.

“야… 진짜 다 했다.”

준호가 웃으며 말했다.

유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이제 앨범 나온다…”

하은은 민준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민준은 그 손을 꼭 잡았다.

“잘했어.
우리 다.”


스튜디오를 나서며,
네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골목길 가로등 밑에 섰다.

하은이 작게 말했다.

“우리 이 순간도 기억하자.”

민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노래에 다 들어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