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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무대

우리의 작은 무대 - 3부. 첫 무대의 실패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6.

《우리의 작은 무대》

3부. 첫 무대의 실패

가을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학교 곳곳에는 알록달록한 현수막과 풍선이 매달리고, 복도에는 반마다 준비한 부스 안내 포스터가 가득 붙어 있었다.
운동장에는 임시 무대가 세워졌다.
무대 옆에선 선생님들이 분주히 음향과 조명을 체크하고 있었고, 학생회 아이들이 마이크와 줄을 나르고 있었다.

스페이스러브에게 이 무대는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었다.
밴드를 결성하고 몇 주간 합주를 이어오면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기회였다.
민준은 기타를 다시 꺼내 들 때마다 긴장으로 손가락 끝이 살짝 떨렸다.
하은도 노래를 하다 가끔 숨을 고르는 횟수가 잦아졌다.
준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떠들어댔지만, 연습할 때면 스틱을 잡은 손에 땀이 맺혔다.
유리는 평소보다 더 과묵해졌다.


하은은 축제 전날, 연습실에서 다 같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말했다.

“우리 솔직히 아직 많이 부족해. 박자도 가끔 어긋나고, 유리도 아직 베이스 라인 완벽하지 않고…”

유리는 얼굴이 금방 작게 구겨졌다.
하은은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유리야. 네가 못한다는 게 아니고… 우리 다 그렇잖아. 나도 가끔 음 떨리고.”

그러자 민준이 기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이번에 안 나가? 이 무대 못 서면 우리 아마 다시 이런 기회 못 잡을 수도 있어.”

준호가 스틱을 가볍게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맞아. 그냥 한 번 부딪혀보자. 망하면 또 망하는 거지. 인생 뭐 있냐.”

그 말에 유리도 살짝 웃었다.
하은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우리 여기까지 온 거 후회 안 하려면… 해야지.”


드디어 축제 당일.
학교는 축제 분위기로 한껏 들떠 있었다.
운동장에는 꼬치구이, 츄러스, 솜사탕 같은 음식 부스가 늘어섰고, 여기저기서 환호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무대에서는 연극반이 연습한 작은 상황극을 하고 있었고, 댄스 동아리 아이들이 대기실 옆에서 몸을 풀며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스페이스러브는 무대 뒤 작은 텐트에서 악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민준은 기타 줄을 천천히 눌러보며 튜닝을 반복했다.
손끝이 차갑게 식은 게 느껴졌다.
하은은 목소리를 풀기 위해 작게 허밍을 했고, 유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베이스를 껴안았다.
준호만이 유난히 밝게 떠들었다.

“야, 오늘 관중 엄청 많다. 내 친구들이 지금 다 온다고 카톡 옴. 우리 스타 되는 거 아님?”

하은이 긴장된 얼굴로 웃었다.

“준호야, 제발 오늘은 드럼 속도 좀 지켜줘.”

“아, 오케이 오케이. 완전 프로처럼 할게. 오늘은 진짜다.”

민준은 작게 숨을 내쉬며 무대 밖을 바라봤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무대 앞에 모여 있었다.
그 중 몇 명은 스마트폰으로 라이브를 켜거나 영상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회자가 무대 중앙으로 올라갔다.

“자, 다음 무대는! 우리 학교의 핫한 신생 밴드! ‘스페이스러브’의 무대입니다!”

환호가 터졌다.
그 환호 속으로 멤버들이 하나씩 무대로 올라갔다.
하은이 마이크를 잡으며 작게 속삭였다.

“우리 잘하자. 그래도 지금까지 한 거 다 쏟아내자.”

민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가 스틱을 들고 드럼을 두드리며 신호를 보냈다.
유리는 숨을 고르고 베이스를 잡았다.

하은이 마이크에 입을 대자 약간의 하울링이 났다.
순간 다들 화들짝 놀랐다.
음향 담당이 급히 볼륨을 내렸다.
민준의 심장은 더 크게 두근거렸다.

“죄송합니다. 다시 갈게요.”

하은이 멋쩍게 웃으며 관객을 바라봤다.
몇몇이 피식 웃었고, 어떤 아이는 스마트폰을 더 들이댔다.
그 화면에 비친 자기 모습이 이상하게 초라해 보였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됐다.
민준이 첫 스트로크를 넣고, 하은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준호의 드럼이 살짝 늦게 들어왔다.
민준은 순간 당황해 박자를 놓쳤다.
하은의 목소리도 흔들렸다.
유리가 급히 따라잡으려 했지만 이미 리듬은 이상하게 꼬였다.

관객석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하은의 표정이 굳었다.
다시 맞춰보려 했지만, 이미 흐트러진 박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준호가 안절부절못하며 드럼을 세게 쳤다.
그러자 베이스가 더 밀리고, 민준의 손가락이 줄을 헛짚었다.
기타 소리가 탁- 하고 끊기며 이상하게 울렸다.

하은은 겨우 노래를 이어갔지만 목소리가 자꾸 떨렸다.
끝내 한 마디 가사를 놓쳐버렸다.
민준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곡이 끝나고, 관객석에서는 어색한 박수가 흘렀다.
축제니까, 친구들이니까 보내주는 박수였다.
그러나 민준에겐 그 박수가 마치 비웃음처럼 들렸다.

하은은 마이크를 잡은 손을 내려놓고 관객을 향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뒤돌아 나오는 순간, 하은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무대 뒤로 내려오자 마자,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하은은 조용히 얼굴을 감쌌다.
유리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야… 미안하다. 내가 처음에 드럼 들어갈 때 좀 늦었어…”

하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도 가사 틀리고 음도 흔들렸어.”

유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너무 긴장해서 그래. 다음엔… 더 잘할 거야…”

그러나 민준은 기타를 내려놓고 가만히 손을 보았다.
손가락 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때 스르륵 눈물이 났다.
왜 울어야 하는지조차 몰랐지만, 긴장과 후회와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은이 그런 민준을 보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민준아…”

민준은 고개를 숙였다.
하은은 아무 말 없이 민준의 어깨를 살며시 감쌌다.
그 순간,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날 밤, 민준은 기타를 가방에서 꺼내지 못했다.
손끝이 아직도 축제 무대 위에서 느낀 떨림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들기 전, 핸드폰으로 본 친구들의 SNS에는 ‘스페이스러브 첫 공연’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이 있었다.
그 영상 속에서 민준은 박자를 놓치고, 하은은 가사를 틀리고, 준호는 속도를 찾지 못해 허둥댔다.
그리고 유리는 끝까지 머리를 떨군 채 연주했다.

민준은 결국 핸드폰을 던지듯 내려두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 이렇게 망할 거면 왜 기타를 잡았을까.’

그러나 귀를 막아도 자꾸 기타 소리가 들렸다.
하은의 노래 소리도, 준호의 드럼도, 유리의 낮은 베이스도 들렸다.
그 어설픈 연주가, 이상하게도 귀에 계속 맴돌았다.


다음날 학교에서 준호가 민준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그거 봤냐? 우리 영상. 댓글에 ‘그래도 귀엽다’ 이러더라. 크크…”

민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자 준호가 살짝 표정을 바꿔 진지하게 말했다.

“야… 나 어제 집 가는 길에 진짜 계속 드럼 리듬 쳤다. 왜 그렇게 틀렸는지.”

“나도… 많이 연습할게.”

옆에서 유리가 작게 말했다.
하은은 민준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웃었다.

“우리… 아직 스페이스러브니까.”

그 말에 민준은 결국 작게 웃었다.
어제 울던 자신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이 밴드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게 조금은 다행이었다.


그날 방과 후, 네 사람은 다시 음악실에 모였다.
하은은 피아노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제 무대… 솔직히 많이 망했어. 근데, 난 재밌었어.”

민준이 놀라 그녀를 바라보자, 하은은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우리가 망가져도 좋으니까… 계속 하고 싶어. 더 멋지게.”

준호가 크게 손을 들었다.

“오케이! 나도. 나 그 어설픈 박자 다시 안 칠 거다.”

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작게 웃었다.

“우리… 계속 해요.”

민준은 기타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느꼈다.
실패가 부끄럽고, 아프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창피했는데도…
그래도 기타를 놓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