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찾기 위해, 다시》
10부. 느리게 흐르는 시간
그날 이후,
지유는 서울로 돌아갔다.
마지막 날 카페 문을 나서며
“꼭 다시 올게요.” 하고 웃던 얼굴이
서준의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았다.
작은 종소리를 남기고 사라진 문 뒤로
서준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서준은 여전히 카페를 열었다.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조그만 테이블을 닦았다.
낮에는 가끔 동네 어르신들이 와서
수제 파이를 사가거나,
중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따뜻한 코코아를 시키곤 했다.
밤에는 혼자 카운터에 앉아
장부를 정리하거나
창밖 어두운 산길을 가만히 바라봤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말했다.
“서 사장님은 참 느긋하고 착해.”
“혼자 사는데도 늘 표정이 좋잖아.”
맞았다.
서준은 이 마을에서 느리게 살았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
그가 매일 얼마나 지유를 기다리는지를.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따뜻해진 봄바람이 골목을 타고 돌던 오후,
작은 카페 문이 열리며
문종이 딸랑 하고 울렸다.
“어서오세…”
서준은 인사를 하다 말고 숨이 멎었다.
그곳에
지유가 서 있었다.
지유는 수줍게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진짜…
왔네요.”
서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지유는 작은 여행 가방을 가만히 놓고 말했다.
“계속 생각났어요.
여기…
그리고 사장님.”
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지유는 다시 마을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훨씬 더 오래.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빌려 한 달을 살기로 했다.
지유는 아침이면 마을길을 산책했고,
점심엔 서준의 카페에 앉아 여행 노트를 썼다.
밤이 되면
종종 카페 불을 다 끄고
서준과 둘이서만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도시에서는 이렇게 느린 시간이 없어요.”
어느 밤,
지유가 조용히 말했다.
“여긴…
숨 쉴 틈이 많아서 좋아요.”
서준은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가슴이 아릿하게 떨렸다.
“나도 그래요.
당신이 여기 와줘서…
매일이 더 좋아졌어요.”
지유는 부드럽게 웃었다.
어느 날은
둘이서 마을길을 같이 걸었다.
초저녁,
가로등이 켜질 무렵
지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사장님은 왜 여기서 카페를 해요?”
서준은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그냥…
복잡한 거 다 내려놓고 싶어서요.
조금은 외롭게 살고 싶었는데…
그 외로움도 다정하게 느껴지는 곳이 여기였거든요.”
지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왠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밤에 카페 문을 닫고 나와
둘이 나란히 걸었다.
골목 끝에 있는 조그만 공터 벤치에 앉자,
지유가 살며시 말했다.
“나 있잖아요.
처음엔 그냥 사진에서 본 풍경이 예뻐서 오고 싶었던 건데…
지금은…
그냥 여기서 살고 싶어요.”
서준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정말요?”
지유는 웃었다.
“정말요.
근데 그건…
사장님이 여기 있어서 더 그런 거예요.”
그 말에 서준은
숨을 고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여기 있어 주세요.
같이…
이 느린 시간을 살아요.”
지유는 작게 웃으며
서준의 손을 잡았다.
“응.
그러자.”
그 순간,
서준은 조급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지유를 붙잡아야 한다’는 불안도 없었다.
지유가 자신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답이었다.
‘이번 세계에서는…
진짜 이렇게 살면 될 것 같아.’
그리고 그렇게,
서준과 지유는 느리게 흘러가는 마을의 시간을 함께 살았다.
아침엔 같이 골목길을 걷고,
낮에는 카페에서 웃고,
밤이 되면 나란히 앉아 차를 마셨다.
빠르지 않아서 좋았다.
서두르지 않아서 더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