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작은 무대》
6부. 부모님의 반대
민준의 아버지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일찍이 작은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며 성실하게 돈을 벌어 가족을 책임져 왔다.
그런 아버지의 인생관은 언제나 똑같았다.
“남자는 현실적으로 살아야 해. 땅을 밟고, 돈을 벌고, 가정을 지키고.”
민준이 어릴 때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쓰다듬었다.
그때는 그 말이 옳은 줄 알았다.
그러나 민준이 중학생이 되어 기타를 처음 잡고, 음악에 빠져들면서부터 아버지의 말은 점점 벽처럼 느껴졌다.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한 뒤로, 아버지는 더 예민해졌다.
서울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준은 그 사건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그 때문에 전학을 왔고, 새로운 학교에서 밴드부를 만나 조금씩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이 오래 갈 리 없었다.
언제나처럼 연습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거실에 앉아 있던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터질 날이라는 걸.
식탁 위에는 민준이 방에서 들고 나온 악보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걸 들고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민준아.”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상하게 떨렸다.
민준은 괜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뭐냐.”
“…밴드 연습곡이야.”
“밴드? 기타? …네가 아직도 그딴 걸 하고 있었어?”
민준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서울에서 전학 올 때 약속했지? 이제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여기 내려온 것도 네가 달라지겠다고 해서 다 정리하고 온 거잖아.”
민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 공부도 하고 있어.”
“하고 있어? 이게 네가 하고 있다는 거냐?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친구들이랑 밴드니 뭐니…
그게 네가 책임질 현실이야? 돈이 나와? 미래가 있어?”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다 손에 쥔 악보를 구겨 테이블에 내리쳤다.
“네 엄마도 걱정돼서 잠도 못 자고 있어.
음악은 취미로도 할 수 있는 거야.
그런데 너는 지금 삶을 그딴 데 올인하고 있잖아.”
민준은 목이 바짝 말랐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러다 억지로 말했다.
“아버지… 난 진짜로 이거 하고 싶어.”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난 못 봐주겠다.
내가 네 나이 땐 공장에 가서 기계 돌리고, 밤엔 설계 배우러 학원 다니며 살았다.
그렇게 해서 지금 너 학교 보내고 밥 먹이고 있는 거야.”
민준은 눈앞이 뿌옇게 번졌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어.
나는 기타 치고 싶어. 음악 하고 싶어.”
“그만해.”
아버지가 낮게 내뱉었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얼마나 철없는 소린지 알아?
꿈만 꾸다 망하는 사람들 내가 얼마나 많이 봤는데.”
민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테이블에 주먹을 얹은 채 숨을 고르더니,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날 밤, 민준은 방에 들어와 기타 케이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손을 뻗어 보았다가 결국 허공에서 멈췄다.
케이스를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괜히 손등으로 닦았지만, 계속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그렇게 잘못된 걸까…’
며칠간 민준은 연습실에 나가지 않았다.
하은이 몇 번이나 문자를 보내고, 준호가 “야 왜 안 나옴? 우리 연습 개판 된다” 하고 톡을 보내도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는 짧게 “괜찮아?” 하고 물었지만, 그조차도 답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민준은 최대한 사람들을 피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더 허전했다.
기타를 잡지 못하니 이상하게 손끝이 허전했고, 아무리 숨을 쉬어도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들고 나가려는데, 교실 문 앞에 하은이 서 있었다.
그녀는 민준을 보자마자 아무 말 없이 팔을 잡았다.
“따라와.”
민준은 저항할 힘도 없이 끌려갔다.
하은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뒤편 음악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준호와 유리가 이미 안에 있었다.
“이게 뭐야…”
민준이 작게 중얼였다.
그러자 준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야, 너 도망 다니길래 우리가 작당했다.
오늘은 무조건 연습하고 가라.”
유리는 살짝 고개를 숙였지만, 작게 말했다.
“같이 하고 싶어서…”
민준은 그 말을 듣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걸 들키기 싫어 헛기침을 하며 기타를 꺼냈다.
처음 기타를 잡는 순간, 민준은 몸이 가볍게 떨리는 걸 느꼈다.
손끝이 따뜻해지고, 목이 매어왔다.
하은은 피아노를 두드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됐어. 이제 우리 진짜로 다시 시작하자.”
준호가 스틱을 들어올렸다.
“오케이. 이번엔 나도 박자 절대 안 밀린다.”
유리는 조용히 베이스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들어 민준과 눈을 맞췄다.
그 눈빛에는 응원이 있었다.
합주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곧 사운드가 하나로 맞물렸다.
하은의 목소리가 피아노 위를 미끄러지듯 흐르고, 유리의 베이스가 그 아래를 묵직하게 받쳤다.
준호의 드럼은 단단하게 리듬을 잡았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손끝에서 울리는 기타 소리가 심장과 맞닿았다.
아버지의 차가운 표정이 떠올랐다가,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덮었다.
괜히 눈물이 났다.
그래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곡이 끝나자 모두 숨을 헐떡였다.
하은이 민준을 바라봤다.
“우리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민준은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너무 고마워서, 한편으론 미안해서.
연습이 끝난 뒤, 민준은 혼자 음악실에 남았다.
창밖으로는 달빛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민준은 기타를 무릎에 올린 채 줄을 살짝 튕겼다.
그때 문이 살짝 열리며 하은이 들어왔다.
“혼자 있고 싶었어?”
“아니… 그냥 조금 더 치고 가려고.”
하은은 피아노 의자에 살며시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아버지가 뭐라 그러셔?”
민준은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음악 하면… 철없다고.
네 엄마도 불안해한다면서, 공부나 열심히 하래.”
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이해해.
어른들이 보기엔 음악은 늘 위험한 거잖아.
불안정하고, 보장도 없고.”
“근데… 나는 이거 없으면 진짜 숨 못 쉬겠어.”
민준은 살짝 웃으며 기타를 바라봤다.
“내가 기타 처음 잡은 게 중학교 1학년 때였거든.
그때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싸우고, 다들 돌아서는데…
집 가는 길에 기타 학원에서 튕기는 소리 들었어.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문 앞에서 한참 서 있었어.”
하은은 조용히 웃었다.
“그래서?”
“그때 선생님이 문 열고 들어오라고 해서…
앉아서 처음 코드 잡고, E minor 소리 듣는데…
그때 느꼈어.
아, 이게 나 살 길이구나.”
하은은 눈을 가만히 깜빡이다가, 피아노를 살짝 두드렸다.
그리고 민준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치자.
아버지께도 언젠간 네가 왜 이걸 하는지 보여드릴 수 있을 거야.”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하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도 민준에게 용기를 줬다.
그날 밤, 민준은 방에 돌아와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 아버지, 나 음악 계속 할 거예요.
- 나중에 아버지한테도 내가 왜 이걸 하는지 보여드릴게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조금 편했다.
민준은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도 그 공기엔 묘하게 달큰한 자유가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