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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무대

우리의 작은 무대 - 9부. 작은 지역 대회 참가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9.

《우리의 작은 무대》

9부. 작은 지역 대회 참가


“얘들아, 우리 밴드 대회 나가자.”

그 말은 하은이 불쑥 꺼냈다.
늦가을 바람이 음악실 창문을 스치고 지나가던 날이었다.
연습을 마치고 네 사람이 둥글게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을 때였다.

민준은 젓가락을 들다 멈췄다.

“밴드 대회? 그거… 우리 학교 축제 말고 진짜?”

“응.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지역 청소년 밴드 대회.
이 근처 고등학교 밴드들 다 모이는 거.”

하은은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포스터에는 ‘제12회 ○○지역 청소년 밴드 페스티벌’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황색 글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준호가 스틱을 돌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거 상금도 있냐?”

“있지. 1등은 100만원, 2등은 50, 3등은 30.”

유리가 작게 말했다.

“3등만 돼도 베이스 앰프 새 거 살 수 있겠다…”

민준은 괜히 숨이 막혔다.
좋긴 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학교 축제 때 무대에서 완전히 망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하은이 민준을 바라봤다.

“나 무섭긴 해.
근데… 그래도 하고 싶어.
우리가 만든 노래, 진짜 무대에서 사람들 앞에서 불러보고 싶어.”

유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준호가 민준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너만 오케이 하면 우리 바로 신청하자.”

민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머릿속에는 학교 축제 때 흔들리던 하은의 목소리, 엉망이던 리듬, 민망하게 끝난 무대가 스쳤다.
하지만 그 뒤로 더 많이 떠오른 건,
음악실에서 네 사람이 함께 웃던 순간들이었다.

“하자.”


대회 신청을 마친 뒤, 네 사람은 더 본격적으로 연습에 몰두했다.
방과 후에는 거의 음악실에 살다시피 했다.
민준은 새벽까지 기타 리프를 고민했고, 유리는 연습 노트에 베이스 라인을 한 박자 한 박자 적어갔다.
준호는 드럼 패드를 집에 들고 가 연습했고, 하은은 목을 혹사하지 않으려고 물을 항상 챙겨 다녔다.

“이번에 진짜 잘해야 해.”

하은이 물을 마시며 말했다.

“아직도 축제 때 그 소리 잊히질 않아.”

준호가 스틱을 돌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그땐 우리 완전 허접이었지.
근데 지금은 다르잖아.
나 솔직히 이번엔 진짜 자신 있다.”

유리는 작게 웃었다.

“나도… 이제 무대가 그렇게 무섭지 않아.”

민준은 그 말에 속으로 작게 웃었다.
이제 유리가 연습할 때 눈을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너무 당연해졌다.


드디어 대회 당일.
문화회관 로비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각 학교 밴드들은 통기타, 일렉기타, 드럼 스틱, 심벌 케이스를 들고 바쁘게 움직였다.
무대 뒤쪽 복도에는 긴장한 얼굴의 보컬들이 벽에 기대 서성였다.

스페이스러브도 무대 대기실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민준은 기타를 조율하면서 괜히 손이 덜덜 떨렸다.

“야, 너 손 봐. 완전 떨리네?”
준호가 놀리듯 말했다.

“닥쳐. 너도 입술 파르르 떨리거든.”

하은은 긴장된 얼굴로 종이를 쥐고 있었다.
그 종이에는 이번에 부를 ‘우리의 작은 무대’ 가사가 적혀 있었다.
유리는 베이스를 가만히 껴안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무대 담당 스태프가 다가왔다.

“○○고 스페이스러브 팀, 무대 준비해주세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네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악기를 챙겼다.
무대 뒤 커튼 뒤로 가자, 스피커를 통해 다른 팀의 공연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소리조차 민준에게는 심장을 더 빨리 뛰게 만들었다.

“괜찮아.”

하은이 민준의 손을 살짝 잡았다.
그 작은 온기가 놀랍게도 민준의 손 떨림을 멈추게 했다.


드디어 무대 위.
밝은 조명이 눈을 찔렀다.
관객석에는 수십 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맨 앞줄에는 다른 밴드 멤버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 기대 섞인 표정이었다.

“자, 다음 무대는 ○○고등학교 ‘스페이스러브’ 팀입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박수가 터졌다.
그 박수 속에 네 사람은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하은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마이크에 입을 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스페이스러브입니다.
오늘 저희가 부를 곡은…
저희가 직접 만든 노래예요.
‘우리의 작은 무대’ 들어주세요.”

민준은 기타를 살짝 쥐었다.
손끝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준호가 스틱을 가볍게 두드리며 신호를 줬다.

“간다.”


첫 코드가 울렸다.
민준의 기타 소리가 무대 위를 가득 채웠다.
유리의 베이스가 부드럽게 흐르자, 준호의 드럼이 그 위에 리듬을 얹었다.
하은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너와 내가
같은 노랠 부르고 있으니까…”

민준은 숨을 내쉬었다.
관객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기타 줄에서 울리는 떨림과, 옆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소리만이 있었다.

하은의 목소리가 절정으로 치닫자, 민준은 준비했던 솔로를 넣었다.
그 소리가 너무 맑아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곡이 끝나자, 관객석에서 진심 어린 박수가 터졌다.
몇몇은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찍고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네 사람은 동시에 숨을 고르며 서로를 바라봤다.
하은이 눈에 눈물이 고인 얼굴로 말했다.

“우리 진짜 해냈어.”

준호가 큰 소리로 웃었다.

“야, 이건 무조건 상이다. 나 집에 가서 축하주 깐다.”

유리는 작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민준의 팔을 툭 쳤다.

“고마워… 너 아니면 오늘 못 했어.”

민준은 아무 말 없이 기타를 꼭 껴안았다.
그저 이런 순간이 너무 벅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결과 발표는 저녁 무렵이었다.
모두가 로비에 모여 사회자의 발표를 기다렸다.
하은은 떨리는 손으로 민준의 소매를 꼭 쥐었다.

“3등… 스페이스러브!”

사회자가 마이크로 이름을 불렀을 때, 네 사람은 동시에 숨을 내쉬며 환하게 웃었다.
하은이 민준을 끌어안았다.

“우리 진짜 상 받았어!”

준호는 드럼 스틱을 공중에 던지며 환호했다.

“이야아아! 우리 장비 업글 간다!!!”

유리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작게 웃었다.


상금 30만원을 받았다.
그 돈은 네 사람에게는 그 어떤 돈보다 값졌다.
다 같이 분식집에 앉아 뜨거운 우동을 먹으며 상금 사용 계획을 세웠다.

“우선 유리 베이스 앰프 사자. 그거 너 지난번에 지직댔잖아.”

“그리고 남으면 케이블도 싹 바꾸자.
저번에 공연할 때 연결선 문제 있었잖아.”

“좋아. 그러고도 남으면… 치킨 파티 각이다.”

민준은 그저 웃었다.
이 돈이 그냥 돈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서로의 밤샘, 피곤, 눈물, 웃음이 전부 담겨 있었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민준은 기타 케이스를 등에 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환했다.
어제보다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까지 왔네.’

처음 이 시골 학교에 와서, 혼자 음악실에 앉아 기타를 치던 자신이 생각났다.
그때는 이렇게 웃으며 걸어갈 날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앞에 걷던 준호가 돌아보며 말했다.

“야, 멍 때리지 말고 빨리 와.
우리 다음 목표는 전국 대회다.”

하은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맞아. 우리 아직 갈 길 멀어.”

유리도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결국 웃었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그래. 우리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