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작은 무대》
25부. 진짜 현실 앞에서
지방 투어 마지막 공연장은 작은 항구 도시였다.
숙소 창문을 열면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불어왔고,
멀리서 갈매기 소리가 가끔 들렸다.
하은은 창문에 팔을 올려놓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우리 진짜 여기까지 왔네…”
민준은 기타를 손질하다 말고 하은을 바라봤다.
“왜, 또 울 거야?”
“아니야.
근데 괜히… 이제 더 큰 거 하고 싶다.”
민준은 피식 웃었다.
“나도.
이제 더 큰 무대,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치고 싶어.”
하은은 작게 웃더니, 민준 옆에 살짝 기대왔다.
“그리고… 너랑 계속 하고 싶어.”
마지막 공연은 작았지만 관객들이 정말 따뜻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무대 앞에서 하은에게 “언니 목소리 너무 좋아요!” 하고 소리치자,
하은은 얼굴이 빨개져서 웃었다.
민준은 그 모습을 보며 기타를 더 세게 눌렀다.
손끝이 뜨거웠다.
‘지금 이 순간이 계속되면 좋겠다.’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장비를 정리하고 있는데,
기획사에서 함께 투어를 돌던 매니저가 말했다.
“사실 오늘 다른 대형 기획사 쪽에서 관계자가 보러 왔어요.”
네 사람은 동시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진짜요?”
하은이 숨죽여 물었다.
“네.
여러분 이번 투어 영상이 워낙 SNS에서 화제가 됐잖아요.
그래서 직접 보고 싶다고 일부러 왔다더라고요.”
그날 밤, 네 사람은 작은 숙소 방에서 둘러앉았다.
방 한가운데엔 배달 시킨 치킨이 놓여 있었지만,
다들 한 입 먹고는 손을 놓은 채 멍하니 있었다.
“진짜… 우리한테 계약 같은 게 올 줄은 몰랐다.”
준호가 작게 말했다.
유리는 두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떨궜다.
“나 솔직히 조금 무서워.
좋기만 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
하은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 네 명이 같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
민준은 조용히 네 사람을 바라봤다.
“맞아.
어디서 뭘 해도 우리 네 명이면 괜찮을 거야.”
그날 밤, 하은과 민준은 숙소 옥상에 올라갔다.
바닷바람이 살짝 차가웠지만, 그 냄새가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은이 난간에 팔을 올려놓고 바다를 바라봤다.
“나 있잖아.
요즘 더 겁나.”
“왜.”
“너무 좋아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네 명이서 노래하고, 무대 서고…
이게 깨질까 봐 무서워.”
민준은 가만히 하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거 나도 똑같아.
근데…
우린 네 명이니까 괜찮을 거야.”
하은이 고개를 돌려 민준을 바라봤다.
“약속해.
우리 진짜 어디까지 가도 같이 가자.”
민준은 아무 말 없이 하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살며시, 부드럽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응.
같이 가자.”
하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너랑 기타랑… 내 노래 평생 같이 가자.”
민준은 웃으며 말했다.
“평생 귀에 딱 붙어있을게.”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은은 민준 옆에서 작게 웃었다.
“오늘 우리 무대 진짜 좋았지?”
“응.
너 오늘 후렴 할 때 표정 봤어?”
“왜.”
“너 진짜 행복해 보였어.”
하은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민준에게 살짝 몸을 기대왔다.
“그거 다 네 기타 때문이야.”
숙소 방에 돌아오자 유리와 준호는 이미 자고 있었다.
하은과 민준은 살짝 웃으며 이불 옆에 나란히 누웠다.
불은 꺼졌지만, 창문으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이 방 안을 은은히 밝혔다.
하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준아.”
“응.”
“고마워.
계속 내 옆에 있어서.”
민준은 조용히 하은의 손을 잡았다.
“내가 더 고마워.
네가 있어서 내가 계속 기타 치고 싶거든.”
하은은 작게 웃었다.
“우리 계속 이러자.”
“응.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