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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무대

우리의 작은 무대 - 13부. 더 큰 무대 앞에서

by 창작소설 글쓴이 2025. 7. 11.

《우리의 작은 무대》

13부. 더 큰 무대 앞에서


지역 방송 출연 후, 스페이스러브는 생각보다 빨리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영상이 유튜브에서 조회수 3만을 넘기더니, SNS에서도 ‘교복 밴드’, ‘순수 밴드’ 같은 해시태그로 조금씩 퍼졌다.
댓글에는 “이 밴드 노래 너무 순수하다”, “보컬 목소리 진짜 좋다”, “다 같이 쳐다보며 웃을 때 나까지 행복해짐” 같은 말이 붙었다.

하은은 밤마다 누워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소리 죽여 웃었다.
민준도 몰래 누워 수십 번씩 영상을 돌려봤다.
준호는 “야, 나 이제 길 가면 알아보는 거 아냐?” 하고 장난쳤고, 유리는 살짝 얼굴이 붉어져 휴대폰을 품에 꼭 껴안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로 작은 축제 주최측에서 연락이 왔다.
○○읍 가을 음악축제에서 지역 청소년 밴드를 소개하는 무대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하은이 흥분해서 그 소식을 들고 음악실로 달려왔다.

“얘들아! 우리 이번에 ○○읍 축제 무대에 초대받았어!
사람들 엄청 많이 온대. 5백 명 넘는대.”

민준은 순간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했던 축제, 지역 문화회관에서 했던 대회, 방송국 스튜디오…
그리고 이제는 야외, 수백 명이 모인 진짜 축제 무대였다.

준호는 벌써 신난 얼굴이었다.

“오케이! 이제 우리 지방 투어 도는 거냐?
나 진짜 연예인 다 됐네.”

유리는 살짝 고개를 떨궜지만, 조용히 말했다.

“많이 떨리겠다… 그래도 해보자.”

하은이 유리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넷이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차피 같이니까 괜찮을 거였다.


축제 무대 전날, 네 사람은 늦게까지 음악실에서 연습했다.
하은은 목이 쉴까 봐 물을 계속 마시면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유리는 앰프에 귀를 기울이며 계속 박자를 체크했고, 준호는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스틱을 잡았다.

민준은 가끔 손을 멈추고 친구들을 바라봤다.
하은의 눈빛엔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담겨 있었고,
유리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악보를 바라봤다.
준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장난을 치다가도, 연주가 시작되면 누구보다 진지했다.

‘우린 다 무섭지만… 그래도 간다.’

민준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드디어 축제 당일.
무대 뒤에서는 이미 다른 밴드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보컬들은 목소리를 풀고 있었고, 기타리스트들은 앰프를 점검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 사이에 네 사람은 작게 원을 만들었다.

“야, 이번엔 진짜 큰 무대다.
우리 지난번보다 훨씬 잘하자.”

하은이 손을 내밀었다.
유리가 작게 손을 얹었고, 준호가 그 위에 올렸다.
민준도 마지막으로 손을 겹쳤다.

“스페이스러브 화이팅.”

“화이팅.”

네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무대에 올라서자 수백 개의 얼굴이 한꺼번에 보였다.
햇빛이 무대 위를 뜨겁게 비추고 있었지만,
민준은 손이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괜찮아.
우리가 만든 노래니까.’

하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가 가볍게 스틱을 부딪쳤다.
유리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첫 코드가 울렸다.
민준의 기타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넓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유리의 베이스가 그 위에 부드럽게 흐르고, 준호의 드럼이 단단히 리듬을 잡았다.

그리고 하은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너와 내가
같은 노랠 부르고 있으니까…”

처음엔 살짝 떨리던 목소리가 곧 단단해졌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이 소리는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왔지만, 오늘만큼 크게 심장에 박힌 적은 없었다.


곡이 끝나자, 광장 여기저기서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며 손을 흔들었고,
어른들도 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찍었다.

민준은 숨을 몰아쉬었다.
하은이 마이크를 잡은 손을 꼭 쥐며 환히 웃었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스페이스러브였습니다!”

무대 뒤로 내려오자 네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꼭 안았다.
준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야… 나 진짜 오늘 죽는 줄 알았다.”

유리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근데… 너무 좋았어.”

하은은 민준을 바라봤다.
그 눈빛엔 ‘우리 해냈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민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잘했어.
우리 다.”


무대가 끝난 뒤, 주최 측에서 간단히 작은 꽃다발을 건넸다.
하은은 꽃을 품에 안고 행복하게 웃었다.

“나 이런 거 처음 받아봐.”

유리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축제 끝나면 뭐 하고 싶어?”

“글쎄… 라면 먹고 싶다.”

하은의 대답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연예인 되고도 라면 찾냐.”

“당연하지.
난 평생 이렇게 살 거야.”


무대에서 내려온 뒤로도, 민준의 귀에는 계속 그 함성이 맴돌았다.
밤에 집에 돌아와 이어폰을 꽂고 다시 연습 영상을 돌려보는데,
자기 기타 소리가 이상하게 좋았다.

‘어설펐는데… 그래도 진짜 우리 소리 같았다.’

민준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핸드폰 화면에 대고 중얼거렸다.

“계속 가자.
더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