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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기 위해, 다시〉 12부. 네 번째 세계 《너를 찾기 위해, 다시》12부. 네 번째 세계눈을 떴을 때,서준은 숨부터 길게 들이마셨다.어디선가 묘하게 아련한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건 낯익은 흙냄새였다.‘여기가… 어디야…’몸을 일으키자,팔에 느껴지는 감촉이 이상했다.아직 완전히 다 자라지 않은 뼈마디,조금 짧은 다리.그리고 허리춤에 걸린 작은 교복 바지.“어…?”서준은 조심스레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봤다.그곳에는분명 중학생 시절의 자기 몸이 있었다.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과거의 조각들이 스쳤다.학교 복도에서 달리던 모습,친구들과 운동장 구석에 앉아 몰래 군것질하던 기억.그리고 그 순간어디선가 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어 운동장 쪽을 바라봤다.그곳에는교복 치마를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가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뛰.. 2025. 7. 26.
〈너를 찾기 위해, 다시〉 11부. 불가피한 이별 《너를 찾기 위해, 다시》11부. 불가피한 이별한동안 두 사람은마치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살았다.아침이면 함께 산책을 하고,낮에는 카페에서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밤에는 테라스에 나란히 앉아 별을 바라보며서로의 체온을 느꼈다.서준은 매일 속으로 다짐했다.‘이번에는…절대로 잃지 않을 거야.’어느 날 밤이었다.카페 문을 닫고,둘은 늘 하던 대로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잔잔히 바람이 불었다.지유의 머리카락이 살짝 날렸다.서준은 조용히 그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지유야.”“응?”“이제야 알겠어.행복이 별 게 아니라는 걸.”지유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뭔데?”“그냥…너랑 오늘 하루 같이 있었던 거.그게 다였어.”지유는 조용히 웃었다.그리고 서준의 손을 .. 2025. 7. 26.
〈너를 찾기 위해, 다시〉 10부. 느리게 흐르는 시간 《너를 찾기 위해, 다시》10부. 느리게 흐르는 시간그날 이후,지유는 서울로 돌아갔다.마지막 날 카페 문을 나서며“꼭 다시 올게요.” 하고 웃던 얼굴이서준의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았다.작은 종소리를 남기고 사라진 문 뒤로서준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며칠이 흘렀다.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서준은 여전히 카페를 열었다.매일 아침 문을 열고,커피를 내리고,조그만 테이블을 닦았다.낮에는 가끔 동네 어르신들이 와서수제 파이를 사가거나,중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따뜻한 코코아를 시키곤 했다.밤에는 혼자 카운터에 앉아장부를 정리하거나창밖 어두운 산길을 가만히 바라봤다.사람들은 그를 두고 말했다.“서 사장님은 참 느긋하고 착해.”“혼자 사는데도 늘 표정이 좋잖아.”맞았다.서준은 이 마을에서 느리게 살았다.그런데.. 2025. 7. 25.
〈너를 찾기 위해, 다시〉 9부. 세 번째 리셋, 작은 마을에서 《너를 찾기 위해, 다시》9부. 세 번째 리셋, 작은 마을에서눈을 떴을 때,서준은 부드러운 나무 향을 먼저 느꼈다.머리 위에는 낡았지만 따뜻한 느낌의 목조 천장이 있었고,작은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고요하게 쏟아지고 있었다.“…여긴…”몸을 일으키자,가슴 언저리에 무겁게 내려앉던 불안이 조금은 덜한 듯했다.주위를 둘러보니소박한 인테리어의 공간.그리고 벽에는 손으로 직접 쓴 메뉴판이 걸려 있었다.카운터 위에 놓인 작은 종이에서투른 글씨로 적혀 있었다.오늘의 메뉴핸드드립 아메리카노수제 딸기파이따뜻한 홍차그리고 맨 아래에 작게[서준’s Café] 라고 쓰여 있었다.서준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이번 세계의 나는…카페 주인이구나.’손끝으로 메뉴판 글자를 가만히 쓸어내리며작게 숨을 고르듯 웃었다.낡은 문을 열고.. 2025. 7. 25.
〈너를 찾기 위해, 다시〉 8부. 또 다른 문 《너를 찾기 위해, 다시》8부. 또 다른 문눈을 뜨자마자 서준은 숨부터 거칠게 내쉬었다.아직도 귀에 웅웅거리는 소리가 가시지 않았다.방금 전까지 느낀 그 감각 —온몸이 찢겨 나가는 듯한 아픔과 함께또 하나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번에도…결국 지유를 놓쳤어.’그 사실이 뼈를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서준은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주위를 둘러보니여기는 또다시 그 희뿌연 공간.발밑도 없고, 천장도 없는끝없는 안개의 세계였다.그리고 그곳 한가운데여전히 말끔한 정장을 입은 관리자가 서 있었다.조용히, 그러나 마치 모든 걸 꿰뚫어보는 눈으로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서준은 그대로 관리자를 향해 뛰듯 다가갔다.“왜…왜 나한테 이런 걸 계속 보여주는 거예요?”관리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서 있었.. 2025. 7. 24.
〈너를 찾기 위해, 다시〉 7부. 텅 빈 성공 《너를 찾기 위해, 다시》7부. 텅 빈 성공고급 호텔 스위트룸.서준은 거실의 넓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눈앞에는 대리석 테이블, 그 위에 반쯤 비워진 와인잔이 놓여 있었다.손에 들린 와인잔을 가만히 흔들자붉은 액체가 잔 안에서 부드럽게 일렁였다.“지유…”조용히 이름을 불러봤다.하지만 그 이름은 낯선 방 안에서 메아리조차 없이 사라졌다.스마트폰 화면은 여전히 바쁘게 깜빡였다.[내일 오전 M&A 최종 보고 드리겠습니다.][대표님, 스위스 본사 회장님이 다음 주 일정 확인 부탁하셨습니다.][조선일보 단독 인터뷰 건 확인 바랍니다.]끝도 없이 올라오는 문자와 메일.모두 중요한 일들이었을 것이다.이 세계의 서준이라면 분명 의욕적으로 처리했겠지.그러나 지금 이 서준은그 모든 게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밤이 깊.. 2025. 7. 24.